대체 너는 누구냐?
권영상
토요일을 믿고 간밤 잘자리에 늦게 든 때문일까. 한낮이어도 몸이 무겁다.정신을 깨울 겸 집을 나섰다. 아파트 후문 뒤 오솔길을 걷다가 내처 구청으로 향했다. 거기 벼룩시장이 생각났다. 뭘 꼭 사기보다는 사람들 속에 섞여 무거운 몸을 잊고 싶었다. 혹시나 하고 구청 마당에 들어섰는데 역시나다.
온김에 구청 뒷산길로 들어섰다. 근방에 살면서도 이곳 산을 올라본지는 오래다. 20여 년은 될까. 옛 추억을 생각하며 배드민턴장이 있던 곳을 지나 둥글레가 무리지어 살던 산비탈 길을 올랐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가끔 함께 오르던 그 길인데 배드민턴장만 사라졌을 뿐, 둥글레가 산자락을 가득 뒤덮던 그 옛길 그대로다.
산중턱에 올라 저 아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을 굽어보다가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올랐다. 서늘한 가을 오후의 바람을 맞으며 허이허이 올라선 정상에 낯선 정자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자 기둥에 큼직한 거울이 걸려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 거울 앞에 섰다. 뜻밖에도 거기 너무나 낯선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방금 산길을 오르느라 헐떡거리고 있는, 날마다 일에 치여 사느라 얼굴이 푸석한 사내다. 아무리 아니라해도 먹을 만큼 나이를 먹은 늙수구레한 얼굴이다.
"너는 대체 누구냐? "
나는 그를 빤히 보며 물었다.
내 헐렁한 옷차림이며, 껑충한 키며, 눈가의 잔주름이며,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다. 나는 아직 젊어 얼굴은 윤기 나고, 눈초리는 반짝이고,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거울 앞을 떠나는 내 머리에 독일 작가 아이작 싱어의 동화가 떠올랐다.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오두막집에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세간살이라곤 침대와 장의자와 난로가 전부였고, 거울은 없었다. 그리고 한번도 이 오두막집 바깥을 나가본 적 없는 개라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개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는 태어나 오직 서로를 바라보며 살았기에 개는 자신의 얼굴이 고양이라 생각하였고 고양이 또한 자신의 얼굴이 개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농부의 집에 길을 잘못 든 방물방수가 찾아왔다. 농부의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싼 값으로 주겠다는 말을 듣고 거울 하나를 샀다. 거울에 매달려 제 못난 얼굴에 절망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농부는 거울을 빼앗아 다락방에 깊숙히 숨겨놓았다.
우연히도 어느 아침, 자신을 고양이라 생각하는 개가 이 거울을 발견했다. 거기엔 한번도 본 적없는 낯선 짐승 한 마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개는 거울 속 짐승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짖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개가 놀라 소리쳐 물었다. 아니, 놀라 소리친 건 나였다. 자신이 고양이라 생각한 개의 낯설음이 나의 낯설음이었다. 거울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사내는 타인의 얼굴로 한 세상을 살아온 낯선 나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아닌 수없이 많은 다른 나의 얼굴로 살아왔다.
산을 한 바퀴 돌아올 때 나는 정자를 멀찍이 비켜 걸었다. 거울 속 사내를 다시 만나기 싫었다. 그러나 산비탈길을 걸어 내려오며 생각해보니 거울 속 사내가 가여워졌고, 윤동주의 시 속 ‘나’처럼 그런 사내가 다시 그리워졌다.
교차로신문 2019년 1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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