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사람이 좀 참지
권영상
“고양이 갖다 버려요!”
해질 무렵, 파밭에 물을 주는데 측백나무 울 너머 길에서 느릿한 목소리가 날아온다. 옆집 아줌마다. 다들 아줌마라고 부르긴 하지만 연세가 일흔이다.
“갖다 버리라니요? 걔는 내 친구에요. 친구를 내다버리라구요?”
옆집 아줌마 말에 대꾸하는 이는 우리 뒷집 젊은이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그를 길목에서 아줌마가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끄러워!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우는 고양이는 처음이야. 몇 번을 말해야 내다버릴 거야!”
아줌마가 성을 참지 못하고 반말이다.
뒷집 젊은이가 고양이를 키운 건 봄부터다. 봄부터 고양이 버리라고 아줌마는 퇴근 무렵이면 젊은이와 맞섰다. 아휴, 저놈의 고양이! 저걸 왜 데리고 산대! 가끔 텃밭에 나가면 내가 들으라는 식으로 아줌마는 고양이를 못마땅해 했다.
“버리람 버리지 왜 안 버린대! 혼자 산다고 내 말 우습게 듣는 거야!”
아줌마가 투덜대며 집으로 들어간다. 아줌마는 그런 식이다. 내 식대로 남의 삶에 끼어든다.
아줌마네 옆집에 젊은 부부가 산다.
그들이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집 앞 길 경계를 넘다든다며 그들과 싸운 적이 있다. 그 뒷날 아줌마는 자신의 집앞 길과 그들의 경계가 되는 길 위에 가시가 뾰죽뾰죽한 마른 장미나뭇가지를 쭈욱 뉘여 놓았다.
“젊은 사람이 참아요.”
나는 위로랍시고 그 말을 해주었다. 젊은 부부는 그런 내 말을 듣고 웃었다. 아무리 이유가 정당하다고 해도 연세 많은 분과 싸우면 눈총 받기 십상이다.
내가 그런, 참으라는 말 밖에 못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3년 전 겨울이었다. 잠깐 서울에 올라온 사이, 마을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수도가 터져서 물이 샌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옆집 아줌마가 달려와 알려주었어요, 했다. 이웃을 잘 두어야한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나는 당연히 고마움을 표하며 잘 대해 드렸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마당에 세워놓은 내 차가 자기네 창문에서 보인다며 여기 세워라, 저기 세워라, 사사건건 간섭이었다.
“그래도 한살이라도 젊은 내가 참아야지.”
그때도 나는 그랬다.
방에 막 들어설 때다. 경찰차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경찰이 옆집 아줌마를 만나고 있었다.
그때 뒷집 젊은이가 내게 다가왔다.
“젊은 사람이 좀 참지.”
그러는 내게 젊은이가 말했다.
“왜 성질내는 사람은 늘 성질내며 살고, 참는 사람은 늘 참으며 살아야 하나요?”
그 당돌한 말에 나는 좀 얼떨떨했다. 그러나 그 말은 옳았다. 요 조그만 시골 골목 안에도 자기 식대로 사람 따로 있고 밉지만 그걸 이해해주며 사는 사람 따로 있다.
“혼자 산다고 나를 우습게 여기나봐.”
아줌마는 말끝마다 그러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줌마는 그 말을 보검처럼 휘두르며 자기 성질대로 살고 우리는 참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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