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세차해 보겠습니다
권영상
폭염이 무섭다. 촌놈 근성이 있어 웬만한 여름쯤 잘 참는데 선풍기 앞에서 떠나지 못한다. 밥 먹을 때도 선풍기, 집안일 할 때도, 잠 잘 때도 선풍기 바람에 매달려 산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폭염이다.
그런데도 에어컨을 못 쓴다. 전기세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실외기를 집 밖에 두지 않고 베란다 창안에 둔 까닭이다. 베란다에 십자매가 있다. 실외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열풍이 베란다에 일부 유입되면 베란다 온도를 높인다. 그러잖아도 새들이 헉헉거리는데 열풍마저 가세한다면 그들 목숨이 그야말로 위태롭다.
“사람은 참을 수 있지만 새는 어렵잖아.”
아내는 에어컨을 청소하는 나를 만류했다. 폭염은 가히 폭력 수준이다. 폭염이 공포스러운 건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비 소식도 장마 소식도 끊긴 지 오래다. 기온이 떨어진다는 소식도 없다. 오직 기록을 경신해가는 폭염의 기세뿐이다.
전에 없이 장맛비가 그립다. 남태평양은 태풍도 안 만들고 뭘 하고 있는지. 우리나라를 비켜간 ‘종다리’며 ‘산산’이 원망스럽다.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상예보 기사다. 그 어디에도 비 소식은 없다. 기상예보 기사를 넘기는 내 눈에 댓글 하나가 쑥 들어왔다.
‘그럼, 제가 오늘 세차를 해 보겠습니다.’
탄식하는 댓글들 중에 이런 댓글 하나. 그것이 나를 슬쩍 웃게 만들었다. 통 세차라곤 안 하던 때에 간만에 세차를 하면 꼭 그날은 비가 왔다. 그런 지난날의 경험이 내게도 있다. 한 순간 빗소리만큼 희망을 주는 유머다. 그럴싸한 말에 잠시 속아주는 일은 즐겁다. 그도 나처럼 폭염에 시달릴 테지만 오히려 여유롭다. 타인의 웃음을 생각하는 그는 누구일까.
차를 몰아 아내랑 안성에 내려왔다. 나보다 더 비를 기다리는 것들이 여기 있다. 조금 조금씩 심어놓은 것들이다. 어린 파 모종 끝순이 말라간다. 둥글고 멋들어진 토란잎도 낙엽처럼 말라간다. 토마토는 햇빛에 데어 하얗다. 고추는 채 크지도 못하고 붉어간다. 제일 심한 건 꽃들이다. 해바라기는 불에 탄 것처럼 검다. 메리골드도 샐비어도 대궁이의 반은 바싹 말라있다. 그나마 살아 있는 건 참나리와 칸나다.
도시의 폭염은 시골과 달리 견딜 만하다. 나 하나쯤 선풍기나 에어컨 찬바람 그늘에 들어서면 그만이다. 그러나 시골은 아니다. 폭염에 허덕이는 것들이 빤히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는데 차마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해질녘에 호스를 들고 물을 주고 있을 때다.
“주민 여러분, 식수가 부족해질 우려가 있사오니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목 쇤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딱 한 번으로 마을방송은 그쳤다. 그렇게 말하는 이장님도 오랍뜰에 말라가는 것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다. 나만 살겠다며 이런 위기에서 고개를 돌릴 매정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마냥 물을 줄 수도 없어 간단히 목만 축여주고는 호스를 접었다.
저녁 식사를 마칠 때다. 집에 들어온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십자매 조롱을 거실에 들여놓고 에어컨을 틀겠다는 거다. 목소리가 바짝 말랐다. 그러라 하고는 뜰마당에 나섰다. 간신히 목을 축여준 물에 다시 살아나는 작물들 소리가 요란하다. 푸슥푸슥 잎 펴지는 소리가 봄 음악처럼 싱그럽다. 얼른 내려오지 못한 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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