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빛나는 별이 되어주어

권영상 2018. 7. 25. 10:28

빛나는 별이 되어주어

권영상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 사람 흔적이 있다. 작은 돌무더기다. 돌은 여남은 개 그 앞에 어른 손바닥만한 돌이 세워져 있다. 아이들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세워놓은 돌에 삐뚤빼뚤 연필 글씨가 보였다.

앵무야, 빛나는 별이 되어줘

그러고 보니 이 돌무더기는 앵무새 무덤이고, 이 글은 앵무새를 위한 비문인 셈이었다. 이 더위에 키우던 앵무새를 잃어 여기 이 솔숲에 묻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싱긋이 웃었다. 앵무새가 별이 되길 바라는 그 아이의 깨끗한 기원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누구나 사랑하던 이를 잃으면 그와 다시 별로 만나기를 원한다.



마을로부터 좀 떨어진 여기까지 죽은 앵무새를 안고 온 그 아이는 누굴까. 혼자는 아니겠다. 친구랑, 아니 동생이 있다면 동생이랑, 아니 아빠를 졸라 아빠랑 왔을지도 모르겠다. 필경 이쯤 푸른 숲속에 새를 묻으면 새가 반짝이는 별이 될 거라고 믿는 그 아이.

어린 딸아이에겐 친구가 있었다. 바로 같은 동 같은 계단을 쓰는 옆집 호정이었다. 새를 키우고 싶다는 두 아이를 데리고 분양을 받으러 갔다. 서로 의논한 끝에 호금조를 선택했다. 둘은 나이도 같은 다섯 살. 성향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옆집이라 가깝고 친했다.



내가 보기에도 호금조는 이쁜 새였다. 파스텔 색깔의 보라와 노랑과 분홍이 띠처럼 배열되어 있는 핀치류다. 핀치류란 작고 잘 우는 새들을 말하는데 겉모양 못지않게 울음소리 또한 예뻤다.

귀뚜라미 소리 같아.”

별이 날아와 호루라기를 부는 거 같아.”

둘은 호금조 물도 갈아주고 모이도 챙겨주고, 그들이 즐거우라고 장난감도 넣어주고 악기도 넣어주었다. 그렇게 노는 걸 보면서 호금조 분양 받아오길 참 잘 했구나 했다.



근데 이 호금조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알도 잘 낳고 부화도 잘 하지만 부화된 새끼를 키울 줄 모른다. 그러니까 모이를 물어다 주거나 하는 양육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때를 맞추어 이웃의 도움을 받아 대모격인 십자매 한 쌍을 호금조 조롱 속에 넣어주었다.

자신들의 영역에 난데없이 들어온 십자매 때문이었을까. 다음날 퇴근하여 돌아와 보니 호금조 두 마리가 죽어있었다. 가슴이 덜컹, 했다새를 잃어서가 아니라 불현 닥쳐온 이들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 죽음을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게 난감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하루의 많은 시간을 호금조와 함께 보내는 걸 좋아하던 애들이었는데. 더구나 죽음을 설명한들 이해할 수 없는 나이 어린 다섯 살, 그들을 이해시킬 일이 걱정스러웠다.



늦게야 그 사실을 안 딸아이와 호정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었다. 그러던 그들이 죽은 새가 별이 되게 하는 법을 안다며 새를 두 손에 담아 뒤뜰로 나갔다조개껍질로 담장 밑을 헤치고 풀잎을 깔았다. 호금조를 뉘이고 그 가슴에 풀꽃 세 장을 얹고 한 방울씩 침을 떨어뜨렸다. 잔돌을 모아 별모양을 만들고 그 앞에 비석을 세웠다. 아직 글씨를 쓸 줄 모르던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 지금쯤 호금조가 별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5, 그 무렵 딸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솔숲 이 앵무새 돌무덤. 연일 괴롭히는 폭염에 새들이라고 멀쩡할 수 있을까. 괜히 어느 정치인의 슬픈 죽음이 떠오른다. 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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