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시골마을의 늦가을 하루

권영상 2017. 11. 14. 18:55

시골마을의 늦가을 하루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연다. 밤사이 서리가 내렸다. 건너편 뜰이며, 몇 안 되는 농가 지붕이 하얗다. 가을 설거지를 일찍 마치기를 잘 했다. 제일 걱정이 된 것이 무였다. 올해엔 별로 잘 됐다. 이웃에 나누어주고 남는 건 텃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가을상추 두둑에 비닐도 씌웠다. 지난해엔 끝물고추를 얻어볼 요량으로 요리조리 서리를 비키다가 결국 끝물고추는커녕 고춧잎 하나 건지지 못했다. 모든 건 경험이다. 그때 얻은, 된서리에 대한 경험 탓에 이때쯤이면 긴장한다. 잎 가진 것들을 염려하게 된다. 상추두둑에 씌워놓은 비닐 안을 들여다본다. 파란 상추 빛이 우련히 올라온다. 생명을 지켜낸 기쁨이 크다.



서리 내린 날은 여느 날보다 햇빛이 좋다. 그것도 경험으로 안다. 아침을 먹고 가을걷이한 콩이며 들깨, 결명자를 깨끗한 늦가을 볕 아래 널어 말릴 때다. 집 앞 정자에서 들려오는 마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정겹다. 말 속에 웃음이 가득가득 섞여있다.

어제 배추밭 배추를 서로 나누고, 무를 나누고, 땅콩을 나눈 끝이라 오늘은 정자에 모여 가벼운 담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주스 한 병을 가져다 드리고 나는 밀린 일을 했다. 나와는 먼 이야기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유난히 정겹고 맑은 목소리 탓에 내 맘도 설레었다. 조용한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막힘없이 쏟아내는 깨끗한 목소리도 좋다.



그들의 유쾌한 담화는 점심을 먹고 나서도 여전히 모과나무 너머에서 들려왔다. 나는 또 한 번 마루에 나와 콩이며 결명자를 뒤적여주고, 아내가 털어놓고 간 들깨를 바람에 불리며 참 사이좋은 이들이구나, 할 때였다.

“왜 내 속을 터지게 하는 거야!”

순간 젊은 여자의 고성이 들려왔다.

“도대체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왜 오빠한테 김장까지 해 줘야하는데!”

또 한 번 높은 언성이 들렸다.

그 말에 “에헤! 아니 당신 왜 이래!” 그렇게 만류하는 이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는 그녀의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그 딱한 상황을 어쩌지 못해 “에헤!”를 연발했다. 그녀란 우리 옆집 옆집의 젊은 엄마다. 그녀가 언성을 높이는 상대는 다름 아닌 그녀의 친정어머니였다.



“나는 오빠 때문에 늘 희생만 당하고 살았다구. 내가 학교를 제대로 다녔나, 좋은 옷 한번 입어봤나? 근데 지금 엄마는 아들도 아닌 사위집에 얹혀살며 내 복장을 긁고 있잖아!”

그녀의 어머니가 물색 모르고 그녀의 속상한 데를 건든 모양이다. 그녀의 어머니인 듯 한 목소리가 “오빠니까 그러라는 말이지!” 하며 점점 딸을 화나게 한다. 끝내 그 ‘에헤, 에헤’하던 이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사람 사는 일이란 어디나 똑 같다. 이게 사람 사는 아픔이고 눈물이고 또 힘이다. 반짝일 만큼 행복한 대화도 이쯤에서 끝났다.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한풀 꺾인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방에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 길 건너 배추밭이 떠들썩하다. 남은 배추를 거두어들이는 그들 속에 아까 언성을 높이던 그녀의 목소리도 섞여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목소리가 투명하고 밝아졌다. 갑자기 이 작은 마을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의 늦가을 하루가 이렇게 설핏 지나간다. 해 그림자가 이만큼 마루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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