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긍정과 희망의 노래
국민서관 편집부
권영상 시인의 신간 동시집 197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36년 동안 우리 아동 문학을 이끌어 온 권영상 시인의 새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그간 시인은 50여 권이 넘는 동시집과 동화책을 펴냈고, 세종아동문학상, MBC동화대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문학성을 인정받아 왔다.
이번에 나온 《아, 너였구나!》에는 권영상 시인의 오랜 시적 탐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시집을 이루는 두 축은 음성 상징어를 활용한 언어적 실험과, 깊이를 더한 감각이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살린 정교한 언어는 독자들의 눈, 귀, 입을 자극하며 우리말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준다. 무엇보다 동시집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긍정과 희망의 노래는 지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것이다.
4부로 나뉘어 실린 52편의 동시들은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노래한다. 1부에서는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마음을, 2부에서는 일상에서 특별함과 의미를 찾아내는 모습을 담았다. 3부에서는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일면과 생명을 배려하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스스로를 긍정하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아이의 모습을 담았다.
우리말의 즐거움을 살린 시
“우리글은 말소리를 붙잡아 만든 소리글자이기에 말의 리듬이 똑별납니다. 특히 말소리를 거듭 내는 소리시늉말이나 짓시늉말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연거푸 소리를 내면 노래가 만들어질 것처럼 입이 즐겁지요.”(<시인의 말> 중에서)
이번 시집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음성 상징어를 활용한 우리말 실험이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해 우리말의 운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재미가 가장 잘 살아나는 시가 <고불고불>이다.
“노루골/ 고불어진 다랑이 논길/ 민들레 폈다./ 고불고불 다랑이 논길에/ 촘촘 폈다.”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느새 발로 리듬을 맞추게 된다. “똑똑 봄풀을 끊어 먹는/ 노루더러/ 꽃도 보고/ 고불고불 돌아가 보라고” 부분에서는 고부라진 길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시는 소리가 주는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는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널따란 길을 빙 둘러가고, 쉬어 가는 여유를 일러 주고자 한 시인의 따뜻한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
동시 문학의 거목, 권영상의 신작
권영상 동시의 시적 주체는 아이더러 어떻게 하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넌지시 디딤판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놓아 주는 우리네 아버지의 마음을 닮았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희망과 긍정,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동시집.
-이안(시인)
지금처럼 이 땅의 아이들이 힘겨워한 적이 있을까요. 지금처럼 공부라는 짐에 눌려 시 한 줄 마음 놓고 읽지 못하는 때가 또 있을까요. 나는 시를 쓰며 이 시들이 힘들어 지친 이들에게 조그마한 나무 그늘이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시인의 말> 중에서
등단 36년, 여전히 멈추지 않는 감각 권영상 시인의 문학적 행보는 순수 서정시, 우리 역사를 다룬 시, 억압적인 시대에 저항하는 시를 지나 서사를 다룬 이야기 동시로 이어졌다. 그리고 등단 36년이 흐른 지금, 그의 시적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나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를”(권영상,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 《아동문학평론》 제79호 중에서) 원했던 그는 몇 년 전부터 짧고 감각적인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구방아, 목욕 가자》, 《엄마와 털실 뭉치》,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와 같은 동시집이 그러하다.
2년 전 교직에서 물러난 후로 시인은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나이 80이 넘었을 때 어떤 시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안성에 밭을 꾸리고 시 본연의 감각을 되살리는 일에 오롯이 집중했다. 그러한 이유에서일까, 근래 들어 시의 성격과 분위기가 다시금 바뀌었다. ‘구방이’나 ‘대길이’로 대표되던 어린 화자의 이야기가 줄어든 대신, 시인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시가 늘어났다. 그리고 형태는 더욱 간결하고 정밀해졌다.
혹자는 최근 그가 쓴 시를 보며 어른스러워졌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간 우리 동시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감각을 발견한다. 노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수세미꽃 핀 집>을 보며 시인 이안은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보여 주지 않고 보여 주기가 변치 않는 시의 말하기 방식임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보여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물로써 증명하는 좋은 예에 해당한다. 생활현실(그것이 아이의 것이든 어른의 것이든 간에)을 말하는 방식이 다 같으란 법은 없다. 때로는 매우 감각적으로, 동화적으로,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표현될 필요도 있다. 그것은 여전히 만연해 있는 ‘동시스러운’ 구태를 벗겨 내는 데 효과적일 뿐더러 우리 동시의 지형을 좀 더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다양한 독자를 동시 쪽으로 끌어오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생활현실의 내부를 새롭게 발견하고 인식하게끔 돕는 방식이기도 하다.”
(<해설> 중에서)
이번 동시집에는 권영상 시인의 현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갱신해 온 노장(老將)의 치열한 고민은 우리나라 동시 문단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하는 존재
30년이 넘도록 탐구를 계속해 왔지만, 권영상 동시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언제나 긍정과 희망이었다. 이것은 시인의 녹록치 않았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시인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머니의 오랜 병환과 가난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3년이나 미루어야 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때, 친한 형이 건네 준 시집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뒷심이란 호박씨 하나가 호박순으로 치밀어 오르는 데 필요한 힘입니다. 그 힘은 삼동 내내 잘 삭힌 인분입니다. 그걸 흠뻑 먹어 제 몸의 솟구치는 힘을 만든 호박씨만이 호박을 키워낼 수 있는 거지요.”(권영상, 《동시마중》2013년 1?2월호 중에서)
그렇게 그는 자신의 불행했던 경험을 “뒷심”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씨가 잎을 피워 올리는 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늘 희망을 노래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 시집의 처음을 여는 <딱정벌레의 봄>을 보면 아무리 아프고 힘들다 해도, 세상은 살아 볼 만한 곳임을 말하는 시인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애벌레가
곰곰 생각 끝에
참나무 껍질을 뚫고 나왔다.
아, 이 눈부신 햇빛!
곰곰이 생각하길
참 잘했다.
-<딱정벌레의 봄> 전문
이제 시인은 자신의 희망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의 욕망은 “그쪽 나라”로 가기 위해 “소 발자국에 고인 빗물”에 다가가는 나비를 그린 <창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서 “그쪽 나라”는 도피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이상의 세계다. “서툴기는 해도 홀로 길을 만들어” 가는 “개미”에는 구의 의지와 바람이 담겨 있다(<개미>). 여기서 더 나아가, 개울물과 강물을 지나 드넓은 바다를 두 눈으로 보고야 마는 물총새를 보며, 독자들은 시인이 꿈꾸는 커다란 희망을 마주하게 된다(<물총새>).
그러나 시인이 바라는 세계는 결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몰라 그렇지/ 알고 나면/ 언뜻언뜻 자꾸 뵈는 꽃,/ 벼룩이자리꽃.”처럼 다른 이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하고(<한번 알고 나면>), “냉이 꽃다지는/ 모여 살지./ 꽃 펴도 같이 피고/ 흔들려도 같이 흔들리지.”에서 볼 수 있듯 작고 힘 약한 존재들과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는 진심이 필요하다(<참새들처럼 할배들처럼>). 결코 우리 주변에서 눈을 돌린 적 없는 그의 생각은 “오랫동안 잡혀 본 적 없는/ 문고리가/ 나팔꽃 순을 일으켜 세운다.”처럼 생생한 육체의 언어로써 완성된다(<손>). 함께하는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언제나 새로운, 선물 같은 동시집
지나간 달을 넘기고
새 달을 받는다.
이 아침
나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서른 개의
따뜻한 날을 받는다.
달걀 한 바구니처럼
굵고 소중한 선물.
어미 닭이 달걀을 품듯
서른 개의 날들이
서른 개의 꿈으로 깨어나게 될 일을
곰곰 생각한다.
-<달력을 넘기며> 전문
본래 이 동시집의 제목은 <선물>이었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고, 들려주고 싶었던 것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네 권의 동시집에 그림을 그린 정가애 작가는 이번 작품에 콜라주 기법을 새롭게 적용했다. 그림을 그린 후 모양을 따라 잘라내고,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익숙한 색깔과 형태가 나오지 않는 콜라주는, ‘새롭게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권영상 동시와 잘 어울렸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도구나 재료로 그림을 그리든, 자유롭게 재미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최근 출판사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밝혔다.
“제가 동시를 보고 나서 얻은 소감을 집중하여 그린다면, 그 감정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것이라 믿어요. 그렇지만 제가 읽고 느낀 것 이상으로 어린이 독자들은 그 안에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인 이안의 말대로, 동시란 “어른이 어린이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권영상, 정가애 두 작가는 애정을 듬뿍 담아 《아, 너였구나!》를 세상에 선보인다. 이를 읽은 모든 독자들이 꿈을 품고,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문학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 몰랐네> 세종도서 선정 (0) | 2017.07.22 |
---|---|
시대와 함께 그려낸 빛과 그림자의 무늬 (0) | 2017.07.05 |
권영상 작가 열린아동문학상 수상자 선정 (0) | 2017.05.26 |
시는 삶의 축적이며 시대의 축적 (0) | 2017.05.01 |
진부함으로부터 작별하기 (0) | 2017.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