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장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권영상 2017. 5. 24. 17:39

장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권영상

 

 


오래 전에 읽은 시인 박인환의 평전이 떠오른다. 책방 만리서사를 운영하던 때를 빼곤 그는 늘 배고팠다. 술 마실 돈이 없어 술은 얻어마셨다. 방에 불 땔 여유가 없어 떨며 지내는 형편이면서도 그는 늘 이런 말을 했다.

겨울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에겐 멋진 외투가 있었다. 겨울이 무섭기는 해도 그 외투를 입고 싶었다. 외투 자락을 휘날리며 명동거리를 걷고 싶었던 거다.



근데 요즘 엉뚱하게도 내가 장마를 기다리고 있다. 우산 장수 말고 장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그게 요즘의 나다. 지난 2, 종로 5가 씨앗가게에서 토란을 사들고 돌아설 때다. 씨앗가게 앞길에 칸나며 달리아 알뿌리를 내놓고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두 뿌리 3천원 해 드릴게.”

칸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할머니의 잰 손이 벌써 칸나뿌리를 검정비닐 봉지에 넣고 있었다. ‘보기 좋으라고 노랑꽃 뿌리도 하나 넣었어.’ 그런다. 할머니의 상술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나는 쩝, 입을 다시며 3천원을 드리고 돌아섰다.

뜻하지 않은 칸나봉지를 해들고 전철을 탔다. 왠지 할머니가 말한 노랑꽃 뿌리가 자꾸 생각났다. 노랑꽃이 별 꽃일까마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그 꽃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4, 식목일을 겨우 넘기고 칸나 두 뿌리를 심었다.

토란은 씨감자를 넣을 때 텃밭에 심었고, 칸나는 곰곰 생각 끝에 마당 한가운데에 심기로 했다. 구덩이를 알맞게 파고, 좋은 흙을 넘어 정성스레, 그야말로 공들여 심었다. 그리고는 혹 밟힐세라 굵은 돌 여러 개를 둘레에 박아 표를 해두었다.

그게 커 올라서 벌써 무릎 위까지 올라온다. 이제 또 며칠 지나면 내가 아는 푸르고 넓은 잎을 펼쳐낼 거다. 바람이 좀만 불어도 풍선의 돛처럼 잎을 펴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내맡길 거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밤이면 제일 먼저 내게 비 소식을 전할 테고,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칸나 잎에 듣는 빗소리를 세며 밤의 천기를 가늠할 테다.



그때를 위하여 얼른 장마가 왔으면…….

내 생각은 벌써 거기에 가 있었다. 나는 비와 장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장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란잎에 데굴데굴 구르는 빗방울이며, 비와 바람과 어우러져 넘실거리는 칸나의 여름이 보고 싶었다. 살면서 신념이랍시고 괜한 고집으로 뻣뻣하게 살아온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세상풍파와 어우러져 마치 줏대 없는 사람인듯 아닌 듯, 아니 세상풍파를 연인이나 되는 것처럼 껴안고 넘실넘실 흔들리며 사는 고갯마루 위의 느티나무가 부러웠다.



이제 내 가까이엔 칸나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또는 밤으로 비가 오면 예민하여 비와 놀고, 바람 불면 바람과 어우러져 노래하는 듯 춤추는 듯 사는 칸나를 바라보며 살게 됐다. 늦었지만 그에게서 사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

가끔 뉴스 속에 섞여 나오는 장마전선에 귀 기울인다. 칸나 두 뿌리로 나는 구질거리는 장마를 가뿐히 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란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다. 추운 방에서 떨며 지낼 걸 뻔히 알면서도 외투 때문에 겨울을 기다리던 시인 박인환처럼. 사람이란 모두 기다림으로 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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