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부장 2

까마귀의 말참견

까마귀의 말 참견 권영상 아침부터 길 건너 장씨 아저씨네 고추밭이 떠들썩하다. 건너다보니 떠들썩한 목소리가 고추밭에 들어선 두 대의 파라솔 밑에서 울려나온다. 장씨 아저씨 부부다. 고추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이슬이 말라가는 고추밭을 흔든다. 파라솔 그늘에 숨어 익은 고추를 따는 모양이다. 장씨 아저씨 춘부장께선 지난해에 돌아가셨다. 그래선지 통 보이지 않던 그 댁 며느리인 장씨 아저씨 아내가 모처럼 나왔다. 젊은 분의 목소리가 무잎처럼 푸르고 싱그럽다. 나도 무밭의 벌레를 잡으려고 방에서 나와 무 이랑에 들어섰다. “저번에 진주엄마 말야. 고지서 봐 달래서 갔더니 글쎄 진주엄마 안경이 장장 여덟 개야! 여보, 놀랍잖아? 뭔 멋을 낸다고 여편네가 안경이 여덟 개야?” 숨죽이며 벌레를 찾는 내..

배씨 아저씨의 봄 농사

배씨 아저씨의 봄 농사 권영상 늦은 아침을 끝내고 일어설 때다. 문밖이 소란하다. 마을로 그릇장수가 찾아오는지, 이장님이 뭔 일이 있어 안내 방송을 하는지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집의 안이 마을과 돌아앉아 있어 방송을 한대도 웅웅대기만하지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알겠다. 그릇장수도 마을 방송도 아니다. 커다란 밭갈이 농기계가 길 건너 고추밭을 갈아엎으며 우리 집 앞을 지나고 있다. 고추밭 배씨 아저씨다. 그이는 밭을 갈거나, 고춧대의 끈을 묶거나, 고추를 따거나 할 때 마누라처럼 꼭 데리고 다니는 게 있다. 메들리 유행가다. 밭갈이 기계에 오디오 확성기가 장착돼 있는 모양이다. ‘ 천태만상 인간세상 사는 법도 가지가지. 귀천이 따로 있나.’ 노랫소리는 그의 밭갈이 농기계에서 쏟아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