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 3

가을은 혀 끝에서 온다

가을은 혀 끝에서 온다권영상  마당에 길고양이가 눈 똥을 치우고 있는데 어휴, 하며 옆집 수원아저씨가 뭘 한 상자 들고 오신다."안녕하세요? 뭘 이렇게 안고 오세요?"추석 명절 쇠고 수원 아저씨를 오는 처음 뵙는다.우리는 명절이 가까이 오면 그 전에 명절 선물을 서로 주고 받아왔다.그러고 오늘 처음 안성으로 내려왔다. 추석 연휴가 지난 뒤라 명절을 깨끗이 잊고 내려왔는데 수원 아저씨는 그 동안 내게 뭘 더 주실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더 드리고 싶어서요.”데크 난간에 들고온 상자를 어휴, 하며 올려놓았다.봉지째 따오신 포도다.“예. 포도 좀 하고요. 산책하며 주운 밤 좀 하고, 포도밭에 심은 땅콩. 요 얌전한 봉지 속이 궁금하시죠? 짧은 제 실력으로 키운 배 두 알이에요.”수원 아저씨..

기억의 좌표

기억의 좌표 권영상 아침 식사 후 동네 산에 올랐다. 이틀에 한 번씩 오르는 산인데 그 이틀이라는 시간이 때로는 헷갈린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산행이고 보니 어제 산에 올랐는지 아닌지 기억이 모호할 때가 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머리 감는 일 역시 그렇다. 어쩌면 정신 쏟는 일이 따로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의심하며 산마루까지 올랐다가 되짚어 돌아내려 올 때다. 잣나무 숲길에서 청설모를 만났다. 잣숲에서 청설모를 만나는 거야 신기할 게 없다. 잣이 익는 가을이 아니어도 잣숲에 청설모는 사시사철 눌러 산다. 그러니 청설모를 본다는 게 별반 놀라울 것도 없다. 청설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쯤이야 흔할 테니 청설모 역시 사람을 봐도 별로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