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3

강인한 것들

강인한 것들 권영상 점심으로 순대국을 먹고 나올 때다. 씨앗가게 앞을 지나던 아내가 길가에 내놓은 씨앗 자루 앞에 앉았다. 종자용 쪽파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씨알이 푸석푸석해 보였다. “쪽파는 뭣 하러 심으려고!” 나는 아내를 일으켜 세우려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지난해 아내는, 친구한테 얻은 쪽파 한 봉지를 심어 재미 본 경험이 있다. 아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쪽파 자루 안의 쪽파를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나도 손을 넣어 쪽파를 만져봤다. 서서 본 내 판단과 다름없이 쭉정이에 가까웠다. 알맹이가 있다면 끄트머리쯤에 조그마한 마디 하나가 만져질 뿐 속이 비어있었다. 다음에 사지 뭐, 그 말을 하려는데 아내가 주인에게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대신 많이 드릴 게요. 8천원이요.” 했다. ..

겨울은 가고 봄이 오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오다 권영상 모처럼 뜰안에 빈자리가 생겼다. 소나무가 섰던 자리다. 처음부터 우리가 손을 대기엔 너무 큰 소나무가 뜰안에 있었다. 그게 봄마다 민폐를 끼쳤다. 송화가루 때문이다. 4월 봄바람이 불면 송화가루가 흙길을 달려가는 자동차 먼지처럼 뽀얗게 날렸다. 남의 일이라면 멋있어 보였을 그 풍경이 내 일이고 보니 민폐였다. 우리 집은 물론 이웃집 창문이며 세워놓은 승용차 속을 비집고 들었다. 뜰에 널어놓은 빨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끔 방 청소를 해보면 안다. 물걸레 밑이 송홧가루로 노랬다. 그뿐 아니다. 나무둥치 하나가 이웃 밭으로 기울어져 그 집 농사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궁리 끝에 소나무를 베어내기로 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너무 커 불가능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옆집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