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2

가을이 익고 있다

가을이 익고 있다 권영상 서울행 버스정류장에 아내를 내려주고, 나는 마트 앞에 차를 댔다. 식품 몇 가지를 사 가지고 차에 오르려다 다시 내렸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아쉬웠다. 차를 두고, 가까이에 있는 개울을 향했다. 청미천이다. 개울 안에 시멘트로 만든 다리가 있다. 징검다리처럼 나트막하다. 노란 갈볕을 받으며 그 다리를 건너고 싶었다. 천변 양켠에 무성하게 자란 갈숲. 갈숲 안쪽에 펀하게 개울물이 흐른다. 다리를 건넌다. 그제야 못 듣던 개울물 소리가 철철철 요란하다. 발을 멈춘다. 물소리를 듣는다. 머릿속이 물소리처럼 철철철 살아나는 느낌이다. 웬만한 개울에서 들을 수 없는 큰 물소리다. 굽이쳐 흐르는 물결에 가을볕이 쏟아져 반짝인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개울바닥이 온통 굵은 ..

마당을 하나 가지고 싶다

마당을 하나 가지고 싶다 권영상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할 때면 아파트를 보살펴 주는 분들이 마당을 쓴다. 집 밖을 나와 처음 만나는 분들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분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그분들도 비를 들고 잠시 내 인사를 받는다. 어렸을 땐 나도 매일 아침, 마당을 쓸었다. 아버지가 식전에 전답을 둘러보러 가시면 그 사이 나는 마당을 쓸었다. 손 위로 누님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한결같이 내게 그 일을 시키셨다. 아침 마당을 여는 사람이 사내 아들이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 지론이셨다. 농사를 짓는 농가의 마당이란 게 굉장히 크다. 보리든 벼든 콩이든 들깨든 모두 마당에 들여와 기계로 털었다. 그러니 마당은 집이 깔고 앉은 자리보다 더 컸다. 장마가 끝나면 마당은 상처투성이다. 마당이 험하면 타작이 어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