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같은 가을 들녘 권영상 방에 틀어박혀 며칠간 일에 매달려 있을 때다. 가끔 산 너머 먼 들에서 기계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이즈음 들판에서 나는 기계소리라면 뻔하다. 벼 베는 콤바인 소리다. 차를 몰아 안성으로 내려올 때 길가에 펼쳐진 노란 가을 논 들녘을 보며 아, 가을이 깊어가는구나! 했다. 추수한 논들도 더러 있지만 그대로 있는 논들도 아직은 많았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등산 스틱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들녘에 나가 본지 오래다. 스틱을 잡고 보니 내가 들녘에 나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개들 때문이다. 마을을 나서려면 골목과 몇 채의 집들을 지나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집집마다 개가 있다. 어린 개들은 어린 개들대로 발소리만 들려도 앙칼지게 짖는다. 쇠철망 속에 갇혀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