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 이 사람 너무 좋아말게 권영상 오랜만에 들로 나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들이라고 하면 요 앞, 산 너머 벽장골이다. 산과 산 사이에 펼쳐진 논벌이 벽장골이다.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논벌이 누렇다. 논두렁에 내려서서 벼 포기를 움켜잡아 본다. 내 손아귀가 큰데도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을 만큼 포기가 찼다. 허리를 펴는데 논두렁 저 앞에 별안간에 나타나 달려가는 저건, 저건 논병아리, 논병아리 가족이다. 어미가 앞서고 새끼 세 마리가 털실뭉치처럼 도르르 구르며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논두렁길을 다 갈 때까지 멈추어 섰다. 그들은 노란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돌돌돌 굴러가더니 이내 벼포기 사이로 깜물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그들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한낮 꿈처럼 사라지고 없다. 이 근방 논에 물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