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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

김장하는 날 권영상 토요일 오전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가 없다. -언니 집에 김장 도와주러 가요. 식탁 위에 아내의 메모가 있다. 처형님 댁은 집에서 멀지 않다. 길 건너면 5분 거리다. 며느리들이 특별히 나를 위해 좋은 수육을 만든다고, 점심 먹으러 꼭 오라는 말도 며칠 전에 들었다. 김장하는 일에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하면서도 애들처럼 끼어들고 싶다. 지난해에도 김장하는 날, 점심 먹으러 갔었다. 처형님의 두 아들 내외가 왔었고, 코로나 문제도 있었지만 처형님 친구 두 분도 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김장이라는 것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고 함께 일했다. 한분은 그리 멀지 않은 과천에 사시고, 또 한 분은 처형님이 다니시는 직장 동료인데 목동에 사신다고 했다. 김장이 끝날 무렵 우리는 ..

나는 삼식세끼

나는 삼식 세끼 권영상 나는 삼식 세끼다. 삼식 세끼, 말 그대로 하루 세 끼 꼭꼭 챙겨먹는 남자다. 밥 한 끼라도 거를라치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밥 중독이다. 안 먹으면 답답하고, 불안하고, 어지럽고, 혈압이 떨어진다. 아침에 아내가 길 건너 언니집에 간다며 나선다. "김장 하는 거 도우러 가니까, 점심에 전화하면 밥 먹으러 와." 그런다. “아, 안 돼! 나 바빠!” 나는 그렇게 의기양양 소리쳤지만 아내는 안다. "안 먹으면 혈압 떨어지잖아. 괜찮어. 언니한테 당신 혈압 이야기해 놓을 테니까." 그러고 간다. 배고프긴 좀 이른 시간인데, 벌써 전화가 온다. 처형이다. "얼른 와요. 보쌈해 놨으니. 부끄러워 말고 얼른요!" 그런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일어선다. 안 그래도 내심 가고 ..

이팝나무

이팝나무 권영상 내가 아는 산에는 내가 아는 엄마라는 나무가 있지. 밥 줄까? 밥을 주고, 떡 줄까? 떡을 주고 업어 줄까? 엄머 주다 너무 무거워 털썩, 주저앉아 그냥 나무가 되었다는 엄마나무. 내가 아는 산에는 비탈진 언덕에 엄마라는 나무가 있지.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척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은 척 밥 한 솥 머리에 이고 아들아, 아들아. 밥 걱정하는 나무가 있지. 엄마나무. 동시집 2016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