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3

먼 데를 바라보는 일

먼 데를 바라보는 일 권영상 다락방은 정말이지 별 용도 없이 지어진 것 같다. 여름엔 너무 덥다. 그런 반면 겨울은 너무 춥다. 가뜩이나 다락방으로 연결된 온수 배관 파이프가 어느 추운 해 동파되는 바람에 아예 그 지점을 절단해 버렸다. 그러니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다락방에 올라가지 않는다. 암만 생각해도 다락방은 별로 쓸모가 없다. 이 다락방을 왜 만들었는지 이 집을 지은 목수를 한때 탓했다, 그런데 가끔 다락방 발코니에 나가 먼 곳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그 까닭을 조금씩 알아간다. 눈앞에 드러나는 논벌과 그 논벌 끝 비스듬한 산 언덕, 4월이면 복숭아꽃으로 붉게 물드는 그 산 언덕 과수원. 여기서 3킬로미터는 되겠다. 과수원 너머엔 첩첩이 산이고, 그 어느 먼 산엔 파란색 물류센터가 보인다. ..

청년과 그림

청년과 그림 권영상 창고에서 꺼낸 등산배낭을 푼다. 그 안에 40여 년 전에 쓰던 내 그림도구들이 있다. 나는 폐광 속에 묻힌 불빛을 꺼내듯 내 오래된 청년을 꺼냈다. 이젤과 화구통과 20호짜리 캔버스 두 개가 나왔다. 꾹 닫힌 화구통을 열었다. 테레핀 오일 냄새와 함께 방금 짜다가 둔 것 같은 유화물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오랜 청년의 한 모퉁이 편린이다. 여기 앉아 그림을 그리면 좋겠구나! 다락방이 있는 집을 구하면서 나는 직장생활에 지친 나를 그렇게 달랬다. 그러나 그 후 10년을 흘려보내면서 나는 한 번도 캔버스 앞에 앉지 못했다. 시골은 시골대로 또 바빴다. 어디에 가 머물든 나는 바빴고, 그림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캔버스 앞에 앉는 일은 그림을 업으로 하는 화가가 아니면 실은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