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3

밤눈

밤눈 권영상 저녁을 먹고 창문을 여니 눈 내린다. 아침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기온이 푹신하더니, 찬 기운이 슬쩍 돌더니, 고요할 만큼 조용하더니, 끝내 해 지자, 눈 내린다. 투벅투벅 찾아오는 눈이 밤늦은 손님 같다. 먼데서 무슨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오시는 나의 당숙 같다. 고향 집에 대사가 있을 적이면 강원도 대화 깊은 산골짜기에 사시는 당숙은 해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마당에 들어서셨다. 대문이 없었으니 에흠!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시는 당숙은 밤눈처럼 희끗한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냉한 기운을 잔뜩 옷에 품고 들어오신 당숙은 술자리에 앉자마자 구수한 겨울 이야기를 풀어놓으시곤 했다. 몇 번이나 들었던 호랭이를 만나 서로 먼저 가려고 길싸움을 하시던 이야기, 술에 ..

생각을 멀리 보내는 계절

생각을 멀리 보내는 계절 권영상 계절이 삼동에 와 있다. 찬바람이 온종일 거칠다. 건너편 산, 벌거벗은 나무숲이 음험한 비명을 지르듯 울부짖는다. 새파란 동천에 가득한 건 거친 바람소리뿐 처마 끝 풍경소리마저 은은한 멋을 잃었다. 뜰 마당 배롱나무 가지를 감싸준 보온 테이프가 풀려 나부낀다. 끈을 찾아들고 나가 다시 감아주고 묶는 그 짧은 사이, 냉한 바람에 온몸이 언다. 바람은 하루 종일 대지를 얼려 꾹 침묵하게 한다. 삼동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은 험하기만 하다. 여기는 구름 한 점 없는데 제주와 남쪽 도서지방, 울릉도엔 어제부터 눈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오늘 오후면 내가 머무는 이 곳에도 적지 않은 눈이 내린단다. 문단속을 한다. 커튼과 문틀에 벨크로 테이프를 붙여 바람 들어올 틈을 막고, 뽁뽁이..

중국 출간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국민서관에서 출간 된 동시집 가 이번 7월 중국 광서사범대학출판사에서 출간됩니다. 표지와 수록된 동시 2편을 우선 소개합니다. 눈사람과 아기 아저씨, 우리집에 좀 놀러와요. 아기의 말에 눈사람 아저씨가 반가워 묻습니다. 느네집 따뜻하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 먼 남쪽 동백숲에서 봄 한 톨을 물고 온 동박새가 그만 너무 기쁜 마음에 쓰빗, 울었습니다. 그 소리를 어찌 들었는지 북쪽 먼 산골짜기 무거운 눈을 머리에 인 소나무가 그만 너무 기쁜 마음에 털썩, 눈을 내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