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에 대하여
권영상
아주 옛날, 여우는
숲에서 태어나 마을을 오가며
부지런히 살았다.
그간 자식도 여럿 두었다.
벵골여우, 검은여우, 모래여우, 은여우, 삼손여우, 티베트여우.....
그러면서도
제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이 땅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여우비, 여우볕, 여우사이, 여우오줌풀, 여우콩......
여우에 홀리다,
여우같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2016년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
2016년 한국아동문학인협회 2/4분기 우수동시 수상작
♣ 수상 소감
‘2/4분기 동시 우수 작품상’ 예심을 부탁하기에 택배로 보내 주신 작품을 읽고 다섯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제 작품이 동시 우수 작품상에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웠지요.
내 작품을 올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당선될 수 있을까!
담당자에게 급히 전화를 드렸더니 저 말고 예심을 본 분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선정 동시 「여우에 대하여」는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여우는 오랫동안 교활한 들짐승으로 낙인 찍혀 왔습니다.
인류가 제 입맛에 맞게 붙여 놓은 낙인이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여우는 오직 주어진 생애를 충실히 살았습니다.
이만큼 살아 보니 처음부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는 걸 압니다.
혹 이건 나쁘네 악하네 하며 살았다면 이제 남은 건 그 죄를 용서받는 일입니다.
여우의 생애를 보니 주어진 목숨을 참 치열하게 살았다는 걸 알겠네요.
무엇보다 여우에게 이 기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