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한가위 추석을 앞에 놓고

권영상 2015. 9. 22. 20:00

한가위 추석을 앞에 놓고

권영상

 

 

 

안성에 내려올 때마다 먼저 찾는 곳이 요 앞 논벌 벽장골이다. 벽장골은 양쪽에 산을 끼고 있는 여기선 꽤 넓은 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가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논이다. 논둑길을 걸으며 노란 빛으로 물드는 논벌을 바라보는 일은 내가 농사꾼이 아니어도 즐겁다. 즐겁다 못해 배부르다. 예전 같이 벼메뚜기가 날아올라 어깨에 앉거나 얼굴을 때리는 일은 없지만 마음이 넉넉해진다. 파란 하늘과 한풀 초록이 꺾여가는 산과 벼가 익는 논벌과 노랗게 쏟아지는 가을볕 앞에 서면 내가 가을이 된 느낌이다.

 

 

 

 

이만한 풍경 속에 놓이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아, 가을! 하는 감탄어를 쏟아낼 것이다. 나는 논을 보러 다니던 이 논벌의 주인을 생각한다. 멈추어 그들도 그러했을 찰랑찰랑 익어가는 벼이삭을 손바닥에 얹어본다. 손에 쇠구슬을 얹은 듯 벼이삭이 무겁다. 비록 이 논이 남의 논일지라도 마치 내 논의 벼를 대하듯 가슴이 뻐근해진다.

이렇게 공들인 벼로 예전의 아버지는 한 해 양식을 하셨고, 우리들 학비와 농사비용을 대셨고, 집안 대소사를 치르셨다. 따로 돈이 들어오는 곳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아버지가 기대신 곳은 오직 이 땅뿐이었다. 그러느라 자식이 많은 아버지는 늘 빚에 허덕이셨고,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으셨다.

 

 

 

언젠가 늦은 저녁이었다.

벼 수매장에 벼를 넘기고 오신 아버지 손에 담배 한 보루가 들려있었다.

“나를 위해 돈 한번 써봤다.”

아버지는 담배 보루를 사랑방에 밀어 넣으시고는 마당가 수돗물에 세수를 하셨다. 봄부터 볍씨독에 볍씨를 담그고, 모를 내시고, 김을 매시고, 물꼬를 보시고, 가을장마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시고, 그리고 추수를 하여 벼를 넘기지만 정작 아버지 손에 남는 것이라곤 빈 바람뿐. 벼를 넘기시고 난 그 허전함을 아버지는 기껏 담배 한 보루로 달래셨던 거다. 고향과 먼 이 곳에 와 그 옛날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논벌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데 파란 대문집 할머니가 담장 곁에 선 대추나무 대추를 터신다. 때맞추어 왔다며 붉게 익은 대추 한 바구니를 건네주신다. 내게 주실 거라며 아예 따로 담아놓으셨다. 지난 폭염에 뭘 좀 드렸더니 잊지 않으신 모양이다.

그걸 받아와 거실에 식탁위에 풀어놓으니 방안이 환하다. 통통하게 살찐 놈을 오삭 깨물어본다. 가을볕이 노랗게 배어 달콤하다. 그러고 보니 논둑길을 지나다가 주운 밤 두 개가 있다. 주머니에서 꺼내 껍질을 벗기고 오독 깨물어 본다. 고소하다. 나는 대추 좋은 놈을 골라 따로 한 봉지 만들었다. 추석 아버지 성묘에 써야겠다. 안성에 집을 하나 따로 얻어 아버지 하시던 대로 감자를 심고 고추를 심었다는 말씀을 아직 못 드렸다.

 

 

 

내일 모레가 한가위다. 이 나이에도 명절에 아버지를 찾아갈 고향이 있어 좋다. 올해엔 우선 내가 챙길 성묘음식이 있다. 아버지에게 드릴 대추 한 봉지와 건강에 안 좋다고는 하나 담배 한 갑을 준비해 아버지 담배에 불을 붙여드려야겠다.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남의 입에 무는 담배엔 잽싸게 불을 붙여주었건만 정작 아버지 입에 무시는 담배에 불을 붙여드린 적이 없는 것 같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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