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권영상 2015. 9. 7. 21:14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권영상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릇대로 7시에 일어났습니다.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간밤, 서울서 싣고온 매실과 으름덩굴을 살펴봤습니다. 무사히 잘 있습니다. 나는 삽을 들고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팠습니다. 매실나무는 내 방에서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파고, 으름덩굴은 창문을 타고 오르라고 안방 창문가에 팠습니다. 생땅이라 간신히 구덩이를 파고, 펌프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물이 땅에 스밀 때를 기다려 다시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밥솥은 우렁각시처럼 군말없이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밥이 뜸을 들이는 동안 반찬 몇 가지를 식탁 위에 얹고는 창가에 가 섭니다. 천천히 구름장을 벗어나는 아침해가 말쑥한 얼굴을 내밉니다. 이른 봄의 아침 빛이어도 몸에 닿으니 따스합니다. 나는 해와 마주합니다. 빛을 가득 충전하고 온 해는 춥게 잔 내 몸을 천천히 달아오르게 합니다. 해는 충만한 에너지입니다. 나는 한 병 가득 샘물을 채우듯 내 몸 가득 에너지를 채웁니다.

 

 

 

밥솥의 밥이 뜸 드는 동안 색종이만하던 방안 햇귀도 점점 퍼져서 방안에 가득합니다. 내가 지금 일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구덩이의 물은 스며들고 나는 햇볕에 몸이 달아오르고 방은 가득히 빛을 받아안고 밥솥의 밥은 또 뜸을 들입니다. 그 동안 파헤쳐놓은 흙도 천천히 햇빛에 마르고 있을 테지요. 혼자 밥을 지으며 세상과 마주 서 보는 이 짧은 시간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서로 남남인 듯 해도, 우리의 삶이 묵정밭의 잡초처럼 아무 관계없이 산만한 듯 해도 가만히 보면 어떤 질서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완성되는 데는 거기에 맞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그러니까 뜸을 들여야 맛있는 밥이 되듯 완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 사이 구덩이에 가득했던 물이 쪽 빠졌습니다. 매실나무와 으름덩굴을 집어넣고, 나무가 자라던 방향을 맞추어 정성껏 심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나무를 심어본지 너무도 오랜만입니다. 마치 늦게 자식을 얻은 것 같이 뿌듯합니다.  나는 나무를 두고 이쪽으로 걸어나와 그 나무를 바라봅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나무여도 이 나무도 자라면 저 허공 위에 푸른 숲을 이룰 테지요.

 

 

 

나무 위의 빈 하늘이 무성한 숲으로 차오를 그 때를 그려 봅니다. 그때가 되면 새들이 찾아오겠지요. 먹이를 찾느라 이른 아침부터 하늘을 날아다녔을 테니 새들은 또 얼마나 피곤할 텐가요. 그들은 지친 날개를 접고  잠시 쉬었다 가겠지요.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나는 지금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갈 의자를 만들어주는 셈입니다. 새들은 그 의자에 앉아 노래를 들려주고, 이 집을 찾아온 한 어린 아이는 조용히 그 노래에 귀 기울이겠지요. 으름덩굴은 창문을 타고 오르고 때맞추어 꽃을 피우고 또 으름을 키우고 불어오는 바람과 싸우고 겨울이 오면 뚝뚝 잎을 떨어뜨려 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밥솥의 밥을 뜸 들이듯 그만한 미래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그 때를 생각합니다.

 

<교차로신문 2014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