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는 세상
권영상
봄입니다. 우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도 봄입니다. 며칠 전부터 겉옷 하나 벗고 아침 산행을 하는데 추운 걸 모르겠어요. 미세먼지 탓에 오랜 날 어두운 하늘을 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하늘이 파랗습니다. 그 동안 참 얼마나 그리워한 우리의 하늘인가요. 하늘이 파라니까 햇빛도 눈부시고 반갑습니다.
느티나무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저쪽 내가 가는 길 앞에 까치가 내려와 무언가를 쪼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며 보니 땅에 떨어진 큼직한 삭정이를 물었다 놓았다 합니다. 삭정이의 무게가 힘에 부치는 듯 했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그걸 버리고, 낙엽더미 속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오릅니다. 다가올 봄에 맞는 집을 지으려나 봅니다. 저쪽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아카시나무에 가 앉습니다. 나는 발 앞에 놓인, 까치가 힘에 버거워하던 삭정이를 내려다 봤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크고 굵습니다. 그런데도 쉽게 버리지 못한 걸 보면 집을 짓기에 나름대로 적당한 재목이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마침맞게 잘라 주지.”
까치의 뜻에 맞게 나는 삭정이 끝을 조금 부러뜨려놓고 왔습니다. 까치가 혹시 그 삭정이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다시 날아와 언젠가는 물고 가겠지요. 이렇게 되면 까치가 집을 짓는 일에 작으나마 내 힘도 보태지는 셈입니다. 좀 우습기는 하지만 내 힘이 거기까지 미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까치 또한 집을 짓고 한가한 틈이 나면 그런 우연한 관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지요. 1미터 80센티미터의 키에 80킬로그램이나 되는, 저들의 종족과는 거리가 먼 한 사내의 손을 빌리게 된 것에 대해.
그러고 돌아오려니 나를 감싸고 있는 내 주변의 것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아갈 관계망에 들어있음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함께 글을 쓰는 이형이 생각납니다.
“권형! 안성에 나무 심거든 내 살구나무도 한 그루 심어줘요.”
지난해 가을부터 내게 하는 부탁입니다. 안성에 조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했는데, 봄에 나무를 심을 때 자신도 살구나무 한 그루를 보태겠다는 겁니다. 집들이를 할 때면 보통 성냥이나 세제를 사들고 가던 풍습이 우리에겐 있지요. 근데 이형은 내가 만드는 집에 굳이 살구나무 한 그루를 부조하겠다는 거지요. 그 마음이 참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엊그제에 또 전화를 주었습니다. 이달 20일 모임을 가질 때 광장시장 종묘상에서 살구나무 한 그루를 사가지고 오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살구나무를 심어 꽃이 피고, 살구가 열리면 안성 집과도 잘 어울릴 테고 그 나무가 이형이려니 생각도 하게 될테지요. 아파트 근처에 집을 짓고 살게 될 까치도 바람부는 날이면 내가 부러뜨려준 나뭇가지를 보다가 문득 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끼를 길러 그들의 머리가 굵어지면 사람이 새들에게 불편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줄지 또 누가 알까요.
<교차로신문 2014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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