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행복
권영상
아내가 동창회를 하러간 이튿날 아침이다. 아내의 절친한 학교 동창이면서 또 내 후배이기도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신문에 소개된 내 시를 잘 읽었다는 인사 전화였다. 그이는 아내와 동창이면서도 동창회에 못 가고 지금 집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님 병환은 좀 어떠세요?”
그분의 용건을 다 듣고 난 뒤 나는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이에겐 치매질환에 걸린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가 계신다. 그 시어머니 병수발을 위해 30여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남편의 형제 자매도 물론 있다. 그들은 어머니를 요양 간병원에 보내기를 원했지만 후배는 처음부터 시어머니 간병을 자청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내를 통해 듣기도 하고, 아내와 하는 통화를 통해 듣기도 했다.
지난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시어머니 때문에 하루를 앞두고 여행을 포기했다. 시어머니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팔꿈치를 정통으로 맞아 골절상을 입었다. 딱한 것은 병원에 갈 때면 “이 할머니 백 수하실 거라”고 의사가 말한단다. 그 말을 전해들을 때면 후배의 인생이 가엾게 느껴지곤 했다. 시어머니가 백 수 하신다면 이제 후배는 남은 생애를 시어머니 병수발에 바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런 일들이 안타까워 시어머니 공경에 고충이 얼마나 심하냐며 위로인사를 드렸다.
“근데 선배님, 시어머니 모시는 게 힘들긴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그런데 뜻밖에도 내 위로의 말에 후배가 그렇게 대답했다.
“건강하실 때 저의 시어머님은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시면서도 시어머니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시던 분이셨어요. 무엇보다 당신 자식들 이름은 몰라도 제 이름만은 또렷이 기억하신다는 게 신기해요. 며느리 이름 기억하기 쉬운 일 아니잖아요.”
나는 후배의 말을 들으며 후배가 왜 시어머니 병수발을 자청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 가을에 강릉에 일이 있어 하룻밤 자고 와 보니 시어머니 얼굴에 살이 쪽 빠지신 거 있지요?”
후배가 그런 말도 했다. 그러는 그의 말속에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가득차 있었다. 하룻밤 밖에서 자고 돌아온 며느리의 눈에 시어머니의 살 빠진 얼굴이 보이려면 얼마만한 사랑이 필요할까.
후배와의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놓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즐기는 걸 나는 행복이라 생각했고, 후배는 시부모님 간병에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쏟아붓는 일을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너무도 세속의 바구니에 담긴 행복만이 행복인 줄 알며 살아왔다. 외눈박이로 한쪽의 행복만을 보며 살아왔다. 그쪽 바구니에 담긴 것이 행복의 전부인 양 그 바구니 속 행복만을 찾으려 했다. 그렇듯이 나는 여태껏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려고 안달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한가.
<교차로신문 2014년 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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