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권 영 상
그 건물의 이층은 고속버스터미널이다.
거기엔 값싸게 마실 수 있는 자판기 커피가 있고, 또 잠시 쉴 수 있는 자리들이 넉넉하다.
무엇보다 거기엔 휴가철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것도 휴식중의 큰 휴식이다. 땀을 흘리며 등산을 하거나 폭양의 바다를 어슬렁거리는 것도 좋다. 그러나 붐비는 버스터미널에서 여름을 맞고 보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아, 서방님! 나 지금 여기 대합실 한복판에 있는데.....”
터미널 커피자판기를 향해 가는데 어디선가 투박한 목소리가 난다. 시골버스 안에서 많이 듣던, 정든 목소리다.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갓 퍼머넌트 머리를 한, 한복을 차려 입은 여자분이다. 마중 나오기로 약속한 시동생과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옷차림이나 목소리가 어머니 안 계시는 내 고향의 형수님 같다. 연세며 검게 그을은 얼굴이며 머리 모양새 또한 그렇다. 나는 형수님을 떠올리며 커피를 뽑아 아무데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때 불현 나이든 엄마를 앞세운 젊은 엄마가 딸아이를 데리고 와 내 곁의 빈 의자에 앉는다. 아마 휴가철을 맞아 그간 모시던 엄마를 배웅하는 길인 듯 했다.
“엄마, 이제 그 치마저고리 좀 입고 다니지 마세요, 번거롭게. 불편하잖아요. 불편도 불편이지만 세탁하려면 또 좀 까다로워요.”
젊은 엄마는 서른 후반이다.
의자에 앉자마자 엄마가 입은 옷을 탓한다. 얼굴이 통통하고 눈썹이 검다. 한눈에 보기에도 선하다. 엄마와 마주 보고 싶어 그렇겠다. 의자에서 일어나 엄마 앞에 쪼그려 앉는다. 손에 버스표를 든 젊은 엄마는 엄마를 보내드리는 게 마냥 아쉬운 표정이다.
“그러니 좀 편하게 입어요. 애 아빠 편한 아들쯤으로 생각해도 돼요. 그리고.”
젊은 엄마는 무릎 위에 얹은 엄마 손을 두 손으로 잡는다. 그러고는 엄마를 쳐다보며 매우 애틋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는 말이 없는 분이잖아요. 근데 이번 보니 엄마 잔소리가 더 는 것 같아요. 아무리 아빠가 나이 많이 잡수셨다 해도 아빠는 남자예요. 남자는 여자가 잔소리하는 거 안 듣는대요. 건성으로 듣는대요. 그러니 엄마 잔소리 좀 줄여요. 엄마 마음이야 알지만.”
곁에 앉은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언젠가 내 딸아이가 즈이 엄마에게 하던 말과도 똑 같았다. 자식이 좀 커서 부모의 잘못을 나무라 주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빠한테 좀 더 잘해주세요. 남자들은 나이 먹으면 여자보다 더 외로움을 탄대요. 작은 일에도 삐치고, 혼자 눈물 흘리는 일도 많대요.”
그 무렵이었다.
“3시 10분 일반우등 손님, 어서 타세요!”
그러는 소리가 승차장 쪽에서 났다. 손에 든 표를 확인한 젊은 엄마가 얼른 일어났다.
엄마를 모시고 나가는 젊은 엄마가 “엄마, 알았지?” 그러며 또 한번 다짐을 받는다. “알았다.” 단지 그 말을 하며 딸의 손을 잡고 내 곁을 떠나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한 딸이 나이든 엄마의 생애를 염려해주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다.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배웅을 마친 젊은 엄마가 제 딸아이를 데리고 내 앞을 지나간다.
“엄마 모르지? 엄마도 내게 잔소리 많이 한다는 거.”
다섯 살쯤 돼 보이는 갈래머리 딸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러는 어린 딸아이의 얼굴이 제 엄마를 닮아 통통하다. 눈썹이 검은 게 또한 여간 이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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