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안성에 내려와 감자를 심다

권영상 2014. 3. 19. 20:30

안성에 내려와 감자를 심다

권영상

 

 

 

 

 

안성에 내려와 감자를 심었습니다. 지난 해 늦은 가을에 뜰에 자라는 엉성한 잔디며 풀을 베어내고 밭을 만들었습니다. 스무 평 되는 밭을 만드는데도 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육체적인 일에 습관이 안 된 몸으로 열흘이 넘도록 괭이와 삽을 들고 살았지요. 거름기 하나 없는 생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마른 풀을 베어 불을 놓고, 유기농 거름을 뿌리고, 밭을 한번 뒤집어 놓았댔습니다.

 

 

그렇게 만든 밭은 나의 설레임과 함께 추운 삼동을 났지요. 나는 밭을 위해 겨울내내 집에서 나오는 귤이며 오렌지 껍질, 사과 껍질 등속을 잘게 가위로 잘라 방에서 말렸습니다. 궁상스러운 일 같아도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말리면 밭거름이 되는 그야말로 생태적 활동을 한 셈입니다. 물론 아내의 도움이 있었지요. 이런 생각도 아내가 낸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한 아주머니는 마당에서 크는 닭과 함께 먹으려고 사과를 깎아도 껍질을 일부러 두껍게 깎아 닭에게 주더랍니다. 아내의 말에 나는 사람과 닭의 사이좋은 공생에 충격을 받았었지요.

 

 

“우리도 사과껍질 잘 말려서 밭에 내.”

아내는 곧잘 그런 생태적인 생각을 잘 합니다.

나는 글을 쓰다가 쉴 참이면 거실로 나와 아내가 깎아놓은 과일 껍질을 잘라 말립니다. 예전 고향 아버지가 이러셨거든요. 쉰다하시면서 쉬지 못하는 풍습이 저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말린 과일 껍질이 무려 세 봉지나 되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엔 아버지 기일이라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강릉은 다 아시다시피 감자의 땅이지요. 제사를 드리고, 형수님 댁에 들렀더니 마침 씨감자 눈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데서 눈을 틔워 밭에 내면 싹이 돋는 시간을 줄일 수 있거든요. 대관령 고랭지에서 생산한 씨감자인데 감자 이름이 ‘수미’랍니다. 수미는 분이 많고, 쪄먹는 용도로 적합한 감자라네요. 조카가 강릉농촌지도소에 오래도록 근무하고 있으니 어련할까요.

 

 

 

씨감자는 평지보다 고냉한 땅에서 생산된 것이라야 병충해에 강합니다. 그냥 동네 슈퍼에서 구한 감자를 씨감자로 쓰면 부모의 성질을 다 잃어버립니다.

“씨감자 넉넉하니까 충분히 가져가세요.”

형수님이 마음좋게 한 자루를 내놓으십니다.

“씨종자를 축내면 벌 받지요.”

나는 필요한 만큼 스물다섯 개를 세어왔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나도 따뜻한 안방에 씨감자를 두어 눈을 틔웠습니다. 그리고는 어젯밤, 씨감자 눈을 딴 걸 들고 오늘 내려왔습니다.

거름 세 포대를 다시 뿌리고 아침내내 괭이로 밭흙을 뒤집었습니다. 이랑을 탔습니다. 굼벵이 약이며 살균제도 뿌렸습니다. 씨감자를 간격에 맞추어 잘 놓았습니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잘 말린 과일껍질을 씨감자 위에다 거름삼아 뿌렸습니다. 노란 오렌지며 귤껍질, 빨간 사과껍질을 뿌려놓고 보니 감자이랑에서 과일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지극정성입니다.

“다 올라오거든 그때에 보자.”

그 말을 하고 괭이로 씨감자를 묻었습니다.

 

 

여자의 몸을 헤치고 그 안에 자식을 심는 일을 이렇듯 지극정성으로 했을까요? 아무리 좋은 씨감자도 같은 땅에서 여러 해 사용하면 타성에 젖어 제 우수한 형질을 잃어버립니다. 사람도 안락한 환경을 좋아하면 이내 퇴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씨감자 한 세수대야를 다 심었습니다. 두둑을 큼직하게 잡기 잘 했습니다. 이랑이 큼직큼직하니 보고만 있어도 좀상좀상 한 것보다 넉넉해 좋습니다. 모두 다섯 이랑입니다. 감자밭의 한 쪽엔 4월쯤 고구마를 심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쪽 넓은 쪽엔 콩과 강낭콩을 심을 계획입니다. 땅을 살려내는 작물이 콩과 식물입니다. 뿌리혹박테리아 때문입니다.

남은 거름을 빈 밭에 뿌려 펴고, 땅을 한번 뒤집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상추 비닐온상의 비닐을 벗겼습니다. 지난 겨울내내 그 속에서 상추는 쉬지 않고 푸른 잎을 주었습니다. 그 비닐을 벗겼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소복소복 냉이꽃이 피어있습니다. 하얀 꽃, 냉이. 꽃대가 15센티는 되겠습니다. 그 줄기를 따라 핀 냉이꽃이 바람결에 한들한들 합니다. 냉이꽃만이 아닙니다. 꽃마리도 피었고, 지칭개도 불끈, 대가리를 내밀었습니다. 저쪽 귀퉁이엔 작년 겨울에 꽂아놓은 쪽파가 한 줄 파랗게 크고 있습니다. 미처 비닐 속을 잘 들여다 보지 못한 탓입니다.

 

 

벗겨놓고 보니 밤바람이 걱정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따스해 다행이지만 밤이면 추울 테지요. 온상 속에서 큰 냉이꽃을 얼게 할 순 없잖아요. 벗겨낸 비닐을 다시 씌웠습니다. 내일 상추며 쑥갓 씨앗을 심고, 비닐도 덮어주고 가려했는데, 냉이꽃 때문에 낭패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자리에 씨앗을 뿌려야 하겠네요.

 

 

일하다가 가끔가끔 허리를 펴라는 아내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삽을 놓고 길게 허리를 폅니다. 허리에서 꾸둑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협착증세가 있는 허리라 뻐근할 만치 아픕니다.

허리를 펴고 안성의 하늘을 봅니다. 보오얀 봄하늘을 모처럼 봅니다. 쟁기를 다 거두워 정리를 하고는 볕에다 이불을 내놓았습니다. 밤에 햇빛 담뿍 받은 이불을 덮고 푹 좀 자보고 싶은 욕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