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나의 데뷰작, 이렇게 태어났다

권영상 2013. 9. 23. 10:04

<나의 데뷰작, 이렇게 태어났다>

 

 

 

 

 

 

 

 

 

 

 

 

 

 

 

바다 위에서 뛰노는 햇빛의 놀음놀이

권영상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

 

 

 

햇살 속에

개구쟁이 아이들이 숨어있다.

아침이 깨어날 적부터

빛살 속 맑은 창을 뛰어나와

온 세상을

쏘다니는 아이들.

 

 

커다란 수채물감을 들고

이파랑이마다

작은 바람도 곁들여 그리고

꽃잎엔 상긋한 내음도

마저 그린다.

 

 

골목을 뛰어가면 그 골목대로

강길은 그 강길대로

쓰윽쓱 그리는 아이들.

 

 

해처럼 빨갛게 닮은

작은 개구쟁이들이

저마다

빛살 끝에 해를 묻혀선

옷사품에 감추어 돌아다닌다.

 

 

산비탈

늦잠꾸러기 바람에겐

파랗게 옷자락을 물들여 놓고

가버린 햇살.

 

 

아침이 오는 길목에서는

개구쟁이들이 재갈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눈부신 물감냄새가 난다.

 

 

 

 

197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길>을 응모했는데, 용케도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 해 ‘아동문예’에 동시 <새>가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만 해도 내 몸은 청초한 시의 물이 오른 몸이 아니었습니다. 시를 쓰겠다는 과도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그러니 내 입에선 어마어마한 목소리만 들입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해를 따라 난 길로/ 아이들이/ 해를 물고 뛰어 간다.// 방앗간을 지나 교회탑 밑으로/ 느티나무를 지나 동구 밖으로…….

이렇게 시작되는 동시가 <길>입니다. 지치지 않는 해의 에너지를 받으려고 아이들이 아침 길을 달려간다는 내용으로, 아이들을 빛의 이미지로 파악하려 했습니다. 지나치게 아이들을 미학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과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시가 좀 조용하지 못하고 이념에 사로잡혀 펄펄 살아있습니다. 어떻든 이때로부터 나는 ‘빛의 이미지’에 중독되고 맙니다.

 

 

햇살 속에/ 개구쟁이 아이들이 숨어있다./ 아침이 깨어날 적부터/ 빛살 속 맑은 창을 뛰어나와/ 온 세상을/ 쏘다니는 아이들.......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1982년 ‘소년중앙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이거를 꼭 뭐 내 데뷰작이라고 말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중앙일간지에 당선된 동시인 까닭에 옮겼습니다. 그때는 내 동시를 검증받고 싶어 여기저기 신문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나는 동시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었지요. 시골에 살던 내게 동시집이 있었다면 엄기원 선생님의 <아기와 염소>, 윤석중 선생님이 엮으신 동요집 <물소리 새소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동시랍시고 써놓고도 그게 동시가 되는지 아닌지도 몰랐습니다. 어떻든지 그런 자기 검증의 과정을 ‘소년중앙문학상’에서 끝을 냈습니다.

 

 

 

이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쓸 무렵, 나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햇가 산언덕 학교에 근무했습니다. 거기가 동해시 어달리입니다. 아침에 교실 창문 커튼을 열면 학교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바다와 가까웠지요. 날 좋은 날이면 그 너른 바다를 밟으며 아침해가 축제를 하듯 눈부시게 건너왔습니다. 햇빛은 거의 날마다 바다 위에서 번쩍번쩍 번쩍이며 뛰놀았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에 보는 그 햇빛의 놀음놀이는 나를 끄잡아 세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빛이 내 몸에 오래도록 쌓여 있다가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로 나타난 게 아닐까 싶네요. 전에 전병호 시인께서 내 초기 시에 대한 연구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시인은 내 시에서 ‘빛의 이미지’를 불현 잡아냈습니다. 내 초기시의 강력한 빛의 모티프를 잡으려면 뭐니뭐니 해도 해 뜨는 동햇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동시문학) 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