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의 과잉 촬영
권영상
여름철, 7월 말부터다. 피서라는 말이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알게 모르게 우리도 맥없이 감염되었다. 고향 강릉으로 간다던 생각이 제주도로, 여행경비를 따져보던 아내가 그거면 앙코르와트에 가자고 했다. 나는 대뜸 좋지! 했다.
티셔츠 두어 장과 샌달을 가방에 넣다가 디지털카메라를 떠올렸다. 디지털카메라를 충전했다. 그러고도 예비 바테리 하나 더 챙겼다. 언제부턴가 집을 떠나면 디지털카메라를 챙겼다. 정확이 1995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아날로그카메라였다. 아날로그카메라를 챙기자면 필름이 뒤따른다. 하루 필름 2통쯤. 사진에 문외한이어도 그 정도는 필요했다. 필름이 넉넉지 않아 더 좋은 대상을 고르려다가 그만 놓치는 경우도 있고, 다급하게 찍느라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렇기는 해도 인화를 해 앨범에 정리해 놓고 보면 또 괜찮다. 국내든 어디든 여행을 다녀오면 앨범에 정리를 하는 편이었다. 그때는 여행 경비에 당연히 필름값과 인화비를 포함시켰다. 그렇게 해서 만든 앨범은 장맛비가 요란히 내리는 일요일이나 눈 내리는 겨울쯤에 보면 좋다. 혼자 또는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어느 한 시절을 추억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 앨범이 아닐까.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는 다르다. 플러시메모리 저장 능력 때문에 비용이 따로 필요없다.
캄보디아에 도착해 우리는 해자 건너편의 앙코르와트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해자를 건너면서 나는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때쯤이었다. 안내자가 잊었다는 듯이 우리들에게 현지인 카메라맨을 소개시켰다.
“혹 사진 찍고 싶으시면 이 분한테 부탁하세요. 저녁 식사 때 인화한 사진 드릴 겁니다.”
신청한 사람에 한하며 한 장에 사진값 일 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뭣하러 또 내 얼굴을 찍느냐고 했다.
“우리는 신청하겠어요.”
뜻밖에도 제일 먼저 신청한 사람이 30대 신혼부부였다. 그들은 우리 팀 중에서도 제일 좋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사진 찍어도 집에 가면 한 번도 안 보게 됩니다.”
그가 그랬다. 그 말이 옳았다. 결국 나도 신청했다. 신청을 하고 생각하니 내 손으로 찍는 이 촬영 행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용을 주고 사진 몇 장 받아가면 될 일을 보지도 않을 사진을 습관처럼 찍고 있다. 그렇게 찍어서는 쉴 틈에 이미지를 디스플레이 하는 걸로 모든 건 끝이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 그때부터 일상은 또 바빠지고, 디지털카메라 속의 이미지들도 서랍속에 들어가 다음 여행 때까지 휴면한다. 여행에 대한 이미지와 추억도 그렇게 디지털카메라 속에 갇히고 만다. 일 달러씩 주고 찍어온 사진만이 바쁜 일상을 얼마간 버티다 만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여행도 그렇게 일회용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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