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간섭 속에 참여의 아름다움이 있다

권영상 2013. 7. 15. 13:18

 

 

 

간섭 속에 참여의 아름다움이 있다

권영상

 

 

 

 

 

 

4월 말이다.

주말농장에 상추 모종을 심으러 갔다. 농장 못미처에 있는 모종가게에서 상추 쑥갓 등속을 샀다. 밭에 가자마자 집에서 만들어간 거름흙을 뿌리고, 괭이로 밭흙을 한번 뒤집었다. 그러고는 내가 생각해간 심을 자리를 정하여 모종을 심었다. 모종과 모종과의 거리를 좀 넉넉하게 두었다. 모종이래 봐야 한 줄에 6포기씩이다. 7포기나 8포기도 심으려면 심겠지만 마치 밭을 착취하는 느낌이 들어 간격을 넉넉히 두었다.

그걸 다 심어놓고 물조리개를 가지러 꽤 멀리 있는 관리사무실에 갔다 왔을 때다. 누가 내 모종을 이리저리 뽑아 좁게 옮겨 심어 놓았다.

 

 

 

 

“아, 그거 제가 했어요. 너무 넓게 심었길래...... 초보이신가 해서.”

옆의 옆 밭에서 씨앗봉지를 든 여자 분이 일어섰다. 쉰은 더 될까.

“제가 다 생각해서 심었는데…….”

화가 났지만 낯모르는 여자 분을 보고 성을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뒷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물조리개에 담아온 물을 뿌렸다.

한 줄에 9포기씩 빼곡하니 심어놓았다.

“그렇게 넓게 심을 필요 없어요. 좁게 심어야 잎이 더 잘 커요.”

살집이 좀 많고 얼굴이 투실투실한 이다.

“이래봬도 주말농장한 지 10년 됐어요.”

미안한 기색이 없이 내게 자꾸 말을 던졌다. 제 밭인 양 제 마음대로 옮겨 심어놓은 그 행위가 밉광스러웠다. 기분이 언짢았다. 나도 주말농장한지 6,7년이나 됐다. 거기다가 생각없이 모종 간격을 둔 것도 아니다.

불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방식으로 도와주려는 분을 걸어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일 년 내내 같은 농장에서 종종 얼굴을 대면해야 할지도 모르는 분에게.

 

 

 

 

 

나는 첫째 줄만 그분이 심어놓은 대로 두고 다른 줄은 내 방식대로 모종 간격을 넓혔다.

내가 군말을 더는 안 하자, 자신의 밭일을 다 마쳤는지 내 밭머리를 지나가며 그분이 또 참견을 했다.

“모종도 단조롭게 줄 맞춰 심지 말고 여러 종류를 비좁다 싶게 흩어 심어야 여러 맛을 볼 수 있어요.”

내 밭머리에 우뚝 서서 내가 물주는 걸 보더니 그러고는 갔다. 나이로 치면 나보다 젊은 듯한데 그런 일에 별 신경을 안 쓰는 분 같았다.

“교양머리 없기는.”

나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들릴락말락 한 마디 했다.

어디 가나 제 뜻대로 하려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여 제 뜻을 펴려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근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이가 그분만인가.

명절에 고향집에 갈 때면 나는 늘 아내와 싸운다.

“바지보다 치마 입지.”

꾀도 없이 아내의 옷차림에 간여하다가 한방 맞는다.

“치마 좀 사줘 보시지.”

아내가 그 말 한 마디하고 말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 옷 좀 사 주지.”, “백화점 한번 데려가 옷 사 준 적 있어?”, “사람이 왜 그렇게 꾀가 없어. 이런 명절에.”, “군말없이 내려가 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 이야기는 일파만파 확장된다.

치마 입는 거 싫어하는 아내를 나는 꾀없이 자극했다가 된변을 본다. 가끔 고향에 가거나 함께 일을 보러 나갈 때면 나는 꾀없이 아내의 옷차림에 간섭한다. 그래서 얻는 것도 없으면서 뭔 일에 씌어 그런지 운동화 신지, 모자 쓰지, 목도리 하지, 장갑 끼지 한다.

 

 

 

 

그 정도는 약과다.

지난해 내가 다니던 직장에선 간섭 때문에 싸움이 났다.

우리 직장에선 해마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고사를 지낸다.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도 경건히 받아들일 일이라고 나는 본다. 그 고사를 지내는 자리에서다.

그날 행사의 제주되는 이가 술잔을 받아 향불 위로 잔을 돌리는데 왼 방향으로 세 번 돌렸다.

“오른 쪽으로 돌리셔야지.”

그걸 본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왼 방향이네, 오른 방향이네를 가지고 말 실랑이를 했다. 결국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말로 끝막음이 되었다.

감 놔라, 배 놔라. 이런 말이 생긴 걸 보면 우리 조상님들도 남의 일에 간섭하길 무척 좋아했다는 뜻이다. 그 집의 관례에 끼어든다는 말 속엔 좋든 나쁘든 참여 의지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간섭하시기 좋아하는 우리 당숙모님은 당숙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조문을 받으시려면 그냥 조문만 받으시면 될 일을 이 일 저 일에 끼어드셨다. 어이구, 어이구! 곡을 하시다 말고 조문객 대접을 위한 음식상을 보시면 참견하셨다.

 

“외삼춘 소주 못 자시는데 웬 소주를 올렸냐, 정종 어딨나? 정종 드려.”

그러시고는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이구, 어이구 곡을 슬피하셨다.

그렇게 구슬피 곡을 하시다 말고

“저기 저 고모부, 엉덩이가 자리 밖으로 나왔다. 바지 흙 묻을라.”

그러며 사람을 불러 자리 안에 들어앉게 하셨다.

눈 밖에 나는 걸 보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든 간에 사사건건 끼어드셨다.

 

 

 

그만이 아니다.

친구와 결별하려면 정치 이야기를 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장 심각한 설득하기에 견해차가 다른 정치문제가 있다.

 

우리들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한다.

상대를 자극해 싸움을 불사하면서까지 끼어들어 상대를 자기 식대로 설득하려 한다. 이런 일에 늘 부족한 부분이 있다. 교양이다. 좀 참고 지켜봐주지 못한다. 어찌 보면 남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비문화적 성격 때문인 듯하다.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런 끼어들기 방식을 스스로 경계한다. 싸움을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는 걸 여러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어찌 보면 이런 교양적이지 못한 행위가 그 사회에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좀 위험한 생각도 해 본다. 남이 심어놓은 모종이 넓다고 좁게 고쳐 심는 일은 주말농장이라는 5평 경작에서 생겨난 타당한 방식일수도 있다. 제주를 왼 방향으로 돌리든 오른 방향으로 돌리든 무관심하게 보는 것보다 오히려 끼어드는 일이 적극적인 참여행위가 아닐까. 그때는 좀 시끄럽고, 무례하게 보이지만 그 떠들썩한 일에서 활력을 발견해낼 수도 있다.

 

우리 당숙모께서 곡을 하시는 중에 이 일 저 일에 간섭하시는 걸 보면 모두들 웃는다. 당숙모님 참 못 말려! 다기능이셔! 하고. 정종 내라, 소주 내라 하시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슬피 곡을 하시는 모습은 엄숙한 장례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내시기에 충분한 희극적 행위다. 이건 우리들만의 재능이다.

아내의 옷차림 때문에 심심찮게 부부 싸움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뜸 그런다.

“그런 저런 일로 싸움하신다면 그 집 행복한 집이에요.”

그러며 웃는다.

처음엔 그 말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B급 문화'에 인터넷 댓글이 있다.

차마 눈뜨고 읽기 뭣한 욕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 조롱과 빈정거림의 댓글도 어찌 보면 저질문화 같지만 그게 또 어찌 보면 적극적인 참여 행위다.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남의 나라 일처럼 무심해 한다면 그 나라는 동력을 잃은 늙은 나라거나 아니면 냉소적인 나라다. 읽어보면 그렇고 그런 댓글이긴 해도 그게 참여력을 보여주는 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물건 하나를 봐도 우리는 꼭 한 마디씩 한다. 이것도 물건이라고 만들었나. 누군가 입은 옷을 봐도 한 마디 한다. 저것도 옷이라고 입었나. 사람을 봐도 꼭 한 마디 한다. 주제에.....

부정적인 문화도 역동적인 프로젝터가 긍정적인 문화로 탁 결집해 낼 수만 있다면 그건 삽시에 좋은 문화로 발전한다. 우리들이 부끄러워했던 ‘빨리빨리’와 ‘비빔밥’ 문화가 고급 전략문화로 발전하는 일이 놀랍지 않은가.

우리들의 것은 어찌 보면 다 아름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