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두려운 서울의 8월 10일

권영상 2013. 8. 10. 21:04

 

 

두려운 서울의 여름

권영상

 

 

 

 

 

8월 10일.

아침 창 밖을 보니 장맛비 내리는 바깥 풍경이 야릇하다. 비야 장마니까 늘 보던 그 장맛비다. 그런데 장맛비 내리는 풍경이 음산하다. 우선 아침 시간이 컴컴하도록 어둡고, 연소되지 않고 배출되는 연기처럼 마당 공기가 검푸르다. 나는 음울한 창밖을 다시 내다본다. 이삿짐차 두 대가 14층집 짐을 내리느라 고가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또 한 대는 8층집에 걸쳐져 있다.

“그 차들이 내뿜는 매연인가 보구만.”

아내가 빠른 짐작으로 그런다.

“장마 중이라 매연이 아파트를 빠져나가지 못하나봐.”

나는 또 어리숙하게 바깥 풍경을 이해하려 했다.

 

 

 

비가 뜸하다. 아침비는 기세좋게 내리다가도 이내 그친다. 나는 곧장 산으로 갈 차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마당이 온통 검푸른 대기 물질로 가득찼다. 이삿짐차 두 대가 매연을 내뿜는 건 분명 아니다. 아파트 마당을 나서서 느티나무 오솔길로 들어서자, 불길한 예감이 와락 달겨들었다. 검푸른 대기 물질이 시야를 꽉 틀어막았다. 순간 나는 돌아섰다. 이대로 공기에 노출됐다가는 호흡기관이 다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산으로 들어섰다. 평소에도 공기가 안 좋던 숲속길이 마치 어둠에 침몰한 공포의 빛깔처럼 검푸레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게 있었다.

지구의 종말!

오만가지 지구 오염과 자장력과 중력의 파괴로 아수라장이 되는 영화 속의 종말. 그와 유사한 이 공포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뭔가. 없다. 천천히 이 두려운 현실과 맞닥뜨려 보는 길 밖에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한가로운 여유가 지금 내게는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겠다는 건, 그건 참으로 할 일 없는 내일의 이야기다. ‘내일 지구가 종말한다면’이 아니라 ‘이미 종말하고 있는’ 그런 풍경이다.

 

 

 

 

숲속 나무들 우듬지까지 검푸른 물질이 차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울지 않는다. 새들 울음소리도 없다. 나뭇잎 한장 흔들리지 않는다. 컴컴한 하늘에선 쉴 사이없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산 아래 남부순환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모습이 마치 서울을 탈출하려는 행렬 같아 보인다.

어디선가 지표의 약한 부분을 뚫고 지구가 폭발할 것 같다. 불현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길한 기사가 떠오른다. 지구 종말을 암시한 마야 달력이 떠오른다.

 

 

 

산 정상에 오르도록 인적이 없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른 산들도 목 밑까지 대기오염으로 가득 차올랐다. 도심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검푸른 오염원에 침몰해 있다. 지구 종말 이후의 새로운 지구는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문득 불순한 생각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내내 쉴 사이 없이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친다. 목안을 파고드는 검푸른 물질이 곧 기도를 틀어막을 것 같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비상벨이 요란히 운다. 합선이 된 모양이다. 사람들 몇이 바삐 움직인다. 새로이 태어나는 지구는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그때도 여전히 오늘 이 모습 이대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