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사랑하신 홍걸이 아저씨
권영상
“저기 똥장군 간다.”
“앗, 똥냄새.”
“똥 구린내 똥장군.”
애들은 밭을 가로질러 가는 홍걸이 아저씨를 보면 그렇게 한 마디씩 했다. 홍걸이 아저씨는 똥장군이다. 똥을 잘 누기로 유명한 분이라서? 아니다. 똥과 싸워 백전백승한 분이라서? 그것도 아니다. 똥값도 못하는 장군이라서? 그 말도 물론 아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뭔가?
똥장군을 지고 똥 푸러 다니는 사람이란 말이다. 과거만 해도 똥을 퍼담아 이동할 수 있는 기구라곤 장군과 우차에 싣는 똥통이 전부였다. 장군이란 액체를 담기 위해 옹기로 구운 만든 타원형의 용기다. 물을 담으면 물장군, 똥을 퍼 그 안에 담으면 똥장군이다.
우리 ‘아랫마을’ 홍걸이 아저씨는 집안이 넉넉치 못한고로 우차를 이용하는 똥통 대신 똥장군을 썼다. 그걸 짊어지고 이웃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똥을 퍼날랐다. 농사지을 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우리 ‘아랫마을’ 사람들도 누구 못지 않게 똥을 사랑했고, 귀하게 여겼다. 그러니 보물단지를 안으로 숨기듯 그 누구에게도 똥을 내주지 않았다. 남에게 똥을 주다니! 그런 농군은 밥 먹고 똥값도 못하는 농군이다. 똥에 대해서만은 개똥이라 할지라도 노터치다! 과거 우리나라 농가의 농군들은 세상 어느 나라 농군들과 달리 똥을 소중하게 여기고 또한 밥처럼 아꼈다. 그래서 밥이 똥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니 홍걸이 아저씨는 우리 아랫마을이 아닌 다른 동네에서 똥을 구하기로 마음 먹은 거다. 그곳을 마을에서 좀 멀긴 하지만 똥이 많은 어촌으로 택했다. 어부들이야 밭농사를 짓지 않으니 만고에 똥을 쓸 데가 없다. 측간에 누런 황금똥이 차오르면 농사꾼들은 내심 즐거워하지만 어부들은 환장할 일이다.
그걸 노린 거다. 그러니까 농사 좀 잘 지어보자는 우리 홍걸이 아저씨에게 있어 어촌의 측간이란 일종의 블루오션인 셈이었다.
이웃 어촌 마을엔 예순쯤 되는 집이 있었다. 그러니 똥도 많았다. 측간마다 차 있는 게 똥이었다. 그 똥은 주로 생선을 먹고 눈 똥이라 구린내가 독했다. 채소나 곡류 따위의 식물성을 먹고사는 농촌 사람들은 방귀를 뀌어도 그 냄새가 구수하다. 똥 냄새를 맡으면 마치 잘 구운 구키처럼 향기롭다. 애들 똥은 또 어떤가? 깨보숭이처럼 고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징어 명태에 가자미며 고등어를 일상 잡아먹는 어촌 사람들은 방귀 냄새가 구리거나 코를 쏘듯 맵다. 똥냄새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구려서 콧구멍이 얼얼하도록 저릿저릿하다.
그러나 아무리 독해도 우리나라 똥은 우리나라 똥이다.
그 아까운 똥을 먼데 이웃마을까지 가서 짊어지고 올 힘 있는 장정이라면 우리 아랫마을에서 오직 한분이 있었으니 그분이 똥장군 홍걸이 아저씨다. 홍걸이 아저씨는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 위해 그 누구도 터치하지 못할 그 블루오션을 개척하였다.
홍걸이 아저씨는 정말이지 타고난 지겟군이다. 키가 작달막하고, 허벅지와 장단지가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장단지 근육만 해도 똥 한 지게를 짊어지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온 몸의 피가 장단지로 모이고 온 몸의 근육이 그쪽으로 집중된다. 장단지가 마치 고초장단지처럼 팽팽하게 튀어나온다.
어떨 때에 똥장군에 똥을 가득 채워지고 가시는 그분의 뒤를 따른 적이 있다. 그때에 보면 타고난 듯 작은 몸의 근육 때문에 마치 공깃돌을 들어나르듯이 힘 안 들이고 거뿐거뿐 뛰듯이 걷는다. 뛰는 것은 똥을 더 많이 나르려는 기쁨 때문이다. 똥 한장군씩 짊어지고 돌아올 때의 그 즐거움을 홍걸이 아저씨 말고 또 누가 알 것인가. 똥이 황금이고 밥이고 목숨인데 누군들 안 즐겁겠는가.
그렇게 가뿐가뿐 뛰듯 걸어 왕복 1킬로 미터의 거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을 오갔다. 감히 그 일을 흉내낼 자 어디에도 있을 수 없었다.
홍걸이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그때 연세로 마흔 초반은 되셨을 듯 하다.
그 홍걸이 아저씨 집이 어디 있었느냐? 우리 ‘아랫마을’에서 다시 보리밭과 감자밭 사이로 난 우차길을 따라 300미터쯤 더 가면 나온다. 그쯤이 경포 호수 근처다. 정확히 그 호수 못 미처에 방솔나무 한 그루가 멋드러지게 서 있는데 그 곁에 집 두 채가 놓여있다. 그 중 한 채는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 댁이고, 그 곁에 조고마한 집 하나가 또 있는데 그 집이 홍걸이 아저씨 댁이다.
경포호수가 가까운 곳이라 철새들은 주야로 우억우억우억 울음을 울었고, 봄 아침이면 호수에서 피는 안개가 스멀스멀 악어떼처럼 마당으로 기어들어 왔다. 홍걸씨집 마당엔 늙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복숭아 분홍꽃이 필 적이면 그분의 어린 여동생이 꽃가지를 귓등에 꽂고 간지럽게 노래를 불렀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그 낭랑한 노래를 들으며 우리들은 방솔나무에 매어놓은 그네를 한없이 탔다.
그때에도 하늘에선 종달새가 온종일을 울었고, 안개는 복숭아 꽃그늘을 떠나기 싫어 밤이 되어도 저들 호수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도 모두 은은한 안개 속에 갇혀있었는데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그런 좋은 풍경을 인생의 배경으로 자라 그런지 홍걸이 아저씨는 땅을 몹시 사랑했다. 그분이 땅을 사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똥으로 땅을 걸구는 거였다. ‘걸구다’는 말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말이다. 곧 땅을 건강하게 하고, 그래서 숨을 퍽퍽 잘 쉬게 하는 일이다. 숨 잘 쉬는 땅이 감자든 고구마든 보리든 잘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런 원리를 아시는 데는 그분만의 땅을 사랑하는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땅이 애를 써서 콩과 감자를 키워주었으니 그 대접을 사람이 반드시 해야한다는 철학이다. 그 대접이란 게 뭔가? 사람을 살게 해준 곡물을 고맙게 잘 먹고, 아침마다 깨끗하게 눈 똥을 고대로 땅한테도 돌려드리는 길이다. 유식한 말로 하자면 곧, 똥의 순환농법을 아셨다 이거다.
돌려드린다고 그냥 아무렇게나 눈 똥을 그냥 돌려드려선 안 된다. 그건 결례다. 그냥 생똥을 돌려주면 땅이 세균으로 오염이 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똥을 액비통에 한 두어 달 잘 삭혀서, 그러니까 땅이 맛나게 먹을 수 있도록 잘 발효시켜 돌려드려야 한다.
근데 여기서 홍걸이 아저씨가 깨달은 바가 있다.
사람도 밥과 반찬을 함께 먹어야 건강해지듯 땅한테도 똥만 먹이면 안 된다는 거다.
“마른 풀에 똥을 재운 거름이 진짜 거름이지요.”
참 옳은 말씀이다.
똥은 질소질 거름이라 이것만으로는 좋은 거름이 될 수 없다. 좋은 거름이 되려면 탄소질인 마른 풀과 잘 어울려 발효시켜야 한다.
홍걸이 아저씨집의 위치는 좋은 거름 만들기에 최적지다. 뒷문을 열면 바로 경포호수다. 그 늪엔 한 길씩 되는 풀이 천지다. 그걸 베어 던져두면 저절로 마르는게 풀이다. 그것을 벼수확 다 하고 입동이 다가올 때 그분의 액비통 곁에 두어 번씩 작두질을 하여 쌓는다. 액비통에는 이웃마을에서 퍼나른 똥이 그득히 괴어 삭고 있다. 참 얼마나 흐뭇한 풍경인가. 쌀 수백 가마 쌓아놓은 기분이 이렇겠다.
액비통 곁에 마른 풀을 쌓고 그 위에 똥물을 끼얹는다. 그러고는 또 그 위에다 또 마른 갯풀을 두어 번 썰어 쌓고, 또 삭힌 똥을 주고, 그렇게 키 높이로 거름더미를 만든다. 키 작은 홍걸이 아저씨는 거름더미 곁에 사다리를 놓고, 마른 갯풀과 똥을 번갈아 가며 뿌리고 쌓고를 한다.
그럴 때의 홍걸이 아저씨 옷은 똥물 범벅이다.
“아, 똥이 뭐가 드럽다고. 결국은 밥이 될 것인데.”
홍걸이 아저씨 말씀이 참 맞다.
잘 삭힌 똥은 옷에 묻었다고 더러운 게 아니다. 잘 발효된 고추장이나 잘 숙성시킨 액비통 속의 똥이나 크게 다를 거는 없다. 세균은 싹 죽고 좋은 미생물만 살아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발효시킨 똥은 땅만 먹는가. 아니다.
그 무렵 소나무 삭정이를 찍으러 장성한 소나무에 올라간 동네 다람쥐형 하나가 그 높은 나무에서 가지를 헛디뎌 떨어졌다. 반 죽어 사람 구실을 못하리라 했던 다람쥐 형도 다 살아나는 기적이 있었다.
“우리 똥물을 좀 먹어봐.”
그때 그 다람쥐 형은 홍걸이 아저씨집 액비통에서 받은 똥물을 먹고 살아났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두 홉들이 빈 소줏병 주둥이에 솔잎을 꼭꼭 조여넣고 액비통에 하룻밤만 담그어두면 파랗고 맑은 똥물이 고여든다. 그걸 보약을 먹듯 먹고 다람쥐형은 살아났다. 똥은 그렇게 위대하다. 죽은 것을 살려내는 영험함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 낸 풀거름은 삼동을 나는 동안 좋은 거름으로 태어나고, 그걸 다시 밭에 내면 감자밭에선 주먹같은 감자를 캤고, 보리밭에선 곡간이 터져라 보리를 거두었다.
“참 재미있네요.”
홍걸이 아저씨는 한가한 입동이 오면 똥장군을 지고 이웃 바닷가 마을로 또 간다. 똥 푸는 일이 재미있다. 이렇게 재미있지 않고야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
이 황금똥으로 농사를 지어 아저씨는 자신의 두 동생을 너끈히 공부를 시켰다.
똥을 밭에 내면 밭은 마라톤 선수처럼 지치지 않는다.
사람도 가끔 가끔 똥을 먹고 큰 곡물을 먹어두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 힘으로 자식을 낳고 키워내듯 땅도 그 힘으로 곡식을 키우고 땅심을 지킨다.
우리나라 땅이 서구의 땅과 달리 늘 기름져 왔던 건 똥을 더러워하지 않은 홍걸이 아저씨들이 이 땅에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눈 똥도 더럽다며 물로 씻어내 버린다. 그게 다 어디로 가는가. 푸른 동해바다 먼 데에 뿌려진다. 분뇨 종말 처리장이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밭으로 똥이 가지 않는다. 왜냐? 손 쉬운 비료에 손이 먼저 가기 때문이다.
똥장군 홍걸이 아저씨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신 덕에 땅도 넓히고 집도 큼직하게 지어 사신다.
“똥으로 키운 배추라야 더 맛있고, 감자도 고추도 더 맛있는 법이지.”
홍걸이 아저씨 말씀이 다 옳다.
요새 사람들이 밥맛이 없다고들 하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구수한 사람 똥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 화학비료나 항생제, 온갖 못된 약품을 먹여 키운 소나 돼지똥으로 농사를 지으니 그 밥이 맛있을 리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비싼 유기농법으로 키운 곡물을 먹고 배설한 인분을 밭에다 내야한다. 아깝지 않은가.
똥을 먹지 않는 서구의 땅이 사막화가 된다들 야단이다.
그이들은 똥을 '더럽다'며 바다와 강으로 퍼내어 땅을 메마르게 했고, 우리의 홍걸이 아저씨는 똥을 밭으로 퍼날라 우리나라 땅을 고귀하게 살려냈다.
똥장군을 등에 져도 부끄러워하지 않던 홍걸이 아저씨들이 애석하게 이 세상을 자꾸 뜬다. 안타깝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을 안겨주고 간 아랫마을 경섭이 아저씨 (0) | 2013.06.17 |
---|---|
<오동나무집 사랑방> 1주년 (0) | 2013.06.15 |
어린 시절 내 친구 돈만이네 집 (0) | 2013.06.11 |
명예와 부를 벗어버린 류드밀라 푸틴 (0) | 2013.06.08 |
공평 분배를 지향하는 노느매기 (0) | 2013.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