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리는 날마다 프로가 된다

권영상 2012. 9. 4. 13:19

 

우리는 날마다 프로가 된다

권영상

 

 

 

 

7시면 출근이다. 땡, 하는 시계소리를 듣고 집을 나서려면 6시 10분에 일어나야 한다.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걸어 15분.

출근길은 언제나 부랴부랴다. 거의 30여년을 그런 식으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잘 해오던 출근도 가끔은 싫어질 때가 있다. 가끔 직장을 관두고, 7시가 없는 곳에 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새소리에 깨고, 출근 가방 대신 호미를 들고나가 채소밭의 김을 매고, 오이를 따고 토마토를 따 간략히 아침을 먹는 삶을 꿈꾼다.

 

전철에 오르면 나는 또 버릇대로 책을 편다. 읽기 싫어도 책을 읽는다. 책을 안 읽으면 마주 앉은 사람과 눈을 맞춘다. 눈을 맞추지 않으려면 눈을 감고 가야한다. 눈을 감느니 책을 읽는다. 먹고 사는 직업이 또 나를 책 읽게 한다. 내 안을 밝히기 위해 읽는다기 보다 내 머리가 망가져 밥줄이 끊어질까 두려워 읽는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내 빈약한 머리는 고양이 수준으로 전락한다. 고양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전철이 충무로에 도착하면 나는 또 부랴부랴 일어선다. 안산행 4호선을 갈아타야 한다. 그 시간대의 4호선은 불어터진 뱃속처럼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그 인파가 다 쏟아져 내린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그 인파와 정면으로 만날 때가 있다.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마주치며 실랑이질을 할 때다.

“누가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리면 어쩌나.”

그런 두려운 생각이 섬뜩하게 지나간다.

나는 살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나처럼 환승하는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내려온다. 밀고 밀리는 실랑이 끝에 간신히 계단을 올라가 4호선을 탄다.

 

 

그 전철에 몸을 싣고 지하서울전철역에 도착하면 내 걸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내 직장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서울역과 붙어있어 지하서울역엔 승객이 많다. 많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다 거기 모여든 것 같다. 나는 서부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려면 나와 함께 내린 사람들과 돌진해 이 인파를 뚫어야 한다. 오직 한 길만을 아는 바보 짐승처럼 계단을 오른다. 뒤미처 걸어오는 사람의 무릎이 내 가방을 치고, 내 엉덩이를 치고, 뒷사람의 구두가 내 구두 뒷축을 걷어찬다.

“아씨, 발!”

내가 그런다.

 

황색선 저쪽에서 전철을 타러 오는 또 한 무리의 승객이 들이닥친다. 그들 중 탑승이 급해 달려오는 이가 내 어깨를 밀친다.

“아씨, 발자슥!”

나는 휙 고개를 돌려 소리친다. 그러나 내 말소리는 내 입 안에서만 맴돈다. 돌아보며 중얼거리느라 내가 이번에는 앞사람의 발을 찬다. 스무 살 안팎의 사내가 나를 홱 돌아다 보며 눈을 찡그린다.

“사과!”

그런 눈으로 쏘아본다.

“쏘리!”

나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을 부르듯 대꾸해 준다. 그러면서 중얼댄다.

“싸가져.”

 

 

드디어 1호선에서 하차하여 환승을 위해 계단을 올라오는 인파와 1번 서울역 출구를 향해 가는 우리 진영이 만난다. 누가 내 가방을 친다. 누가 내 발을 건다. 내가 비틀거린다. 누가 내 허리를 젖힌다. 휘두르는 누구의 손이 나를 친다. 누가 내 앞길을 싹 지나간다. 내가 그들을 쓰러뜨릴 기세로 걸어나간다. 그들이 나를 비킨다. 나는 코뿔소처럼 전철역을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이건 케이티엑스가 아니고 아주 고장철이군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매일 같이 듣는 모 방송사의 귀를 찢는 뉴스가 있다. 케이티엑스가 고장철이라는 뉴스를 캡처해 대형 확성기로 재생해 낸다. 말을 들어주지 않는 케이티엑스와 갈 데까지 가보자고 벼르는 사람들과의 싸움에 귀가 터질 것 같이 아프다.

출근이 전쟁이다. 인파 전쟁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서울역을 지날 때마다 나는 꿈꾼다.

서울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한적한 전원을.

자고 싶으면 자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는.

 

그러면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벗어나 롯데마트 앞마당에 올라선다.

그 넓은 마당에 비둘기 십여 마리가 흩어져 한가롭게 아침을 즐긴다.

 

“그래. 이 지랄 같은 출근이 어쩌면 사는가 싶은 세상의 아침일지 몰라.”

 

 

나는 거리의 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린다.

맞다.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적적히 즐기는 전원의 생활이 무슨 제대로된 사람의 삶일까. 그건 무덤속에 들어가 홀로 자장가를 부르는 거와 뭐와 다를 바 없다. 그런 깨달음이 문득 든다.

나에게 단 하룻만의 목숨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하루를 살까? 고급 호텔에 들어가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고, 고급스러운 음악을 듣고, 고급스러운 침대에서 안락하게 잠들다가 떠날 거라면 나는 싫다. 비싼 서유럽 열차의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맥주 암스테르담 마리너의 호프향을 즐기며 저녁 노을을 바라보다 죽는 단하루의 삶도 나는 싫다.

단 하룻만의 목숨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서울의 이 전쟁 같은 아침 출근을 다시 해 볼 것이다. 인파속에서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는, 일생동안 증오했던 이 도시의 번잡함을 다시 한번 투쟁하듯 즐길 것이다. 사람들과 욕질을 하고, 어깨를 밀며 싸우는 이 짜릿함을 나는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소시민의 고된 일상이 어쩌면 그 어떤 삶보다 더 고상할 수 있다. 이런 일상을 통해 우리는 하루하루 프로가 되어 간다. 먹고 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모두 프로다. 프로는 맨날맨날 싸운다. 싫어도 맨날맨날 마운드에 올라서야 하고, 싫어도 맨날맨날 그라운드에 나가 죽도록 뛰어야 한다. 우리는 이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 전쟁을 하듯 맨날맨날 지뢰밭을 건넌다.

나도 어느덧 밥벌이의 프로가 되었다.

 

프로는 박수를 받을 줄도 알고, 야유를 받을 줄도 안다. 절망할 줄도 알고, 비굴할 줄도 안다. 선뜻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할 줄도 안다. 자신을 땅바닥에 집어던지거나 수렁에 빠뜨려 간신히 살아나오는 모습을 볼 줄도 안다.

아! 프로인 우리의 일상은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하다. 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