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의 '상상 동시 가게' 연재동시 4회
16. 햇빛을 빌려드려요
겨울을 코앞에 두고
꽃 피우는 민들레에게
모자라는 햇빛을 빌려드립니다.
일찍 겨울잠을 자러 가느라
미처 다 쓰지 못한
흰 곰들의 햇빛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연락주시면
빌려 쓰실 수 있습니다.
-햇빛 돌려쓰기 어머니 모임
17. 첫눈 배달
아침 문을 여니
뜰마당에 배달이 와 있다.
엄마, 배달이 왔어요!
나는 소리치며 달려나가
세상에서 가장 큰 배달 상자를 연다.
하늘이 보낸 희고 깨끗한 첫눈.
첫눈을 꺼내어 만져도 보고
뭉쳐도 보고
내 꿈이 가는 곳까지 멀리 던져도 보고
그리고 내가 바라던
눈사람을 뜰마당에 오뚝 만들어 세운다.
언제 보내주시려나? 하고
기다리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아셨나 보다.
소복소복 보내온
첫눈 배달.
18. 눈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
창밖을 내다보니
내가 만든 눈사람 달표가 사라지고 없네요.
골목에 서 있던
덩치 큰 눈사람도
볼일이 있는 사람들처럼 모두 가버렸네요.
그 후, 나는 우연히
눈 내리는 상수리나무 숲을 헤매다가
눈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속 마을을 만났죠.
눈사람 달표는 거기 있었습니다.
달표와 나는 힘을 모아
그곳으로 가는 여행자의 길을 뚫었습니다.
당신이 만들고 잊어버린
먼 옛날의 눈사람을 보고 싶다면
그 만남을
우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눈사람 찾아주기 모임
19. 재미난 이야기를 삽니다
하도 재미있어 어느 할머니에게 딱 제 값에 산 이야기입니다.
바보아들이 선을 보러
각시가 될 여자 집에 가는 날이었죠.
바보아들이 걱정인 어머니는
아들의 허리춤에 박 하나를 매달아주며 당부했죠.
그 댁 어른이 성이 뭐냐고 묻거든 여기 매달아준 박을 보고 박씨요!
대답하라고 일렀죠.
바보아들은 덜렁덜렁 길을 떠나 도랑을 휙 건너뛰고,
언덕을 성큼 타고 넘어 각시가 될 여자 집에 다다랐죠.
어른들께 절을 하고 자리에 앉자, 정말 각시가 될 여자 아버지가 물었죠.
-성씨가 뭣인가?
바보아들은 너무나 쉬운 물음에 낄낄 웃으며
허리춤을 쓱 들추어 보았죠.
아하, 이걸 어쩌나요.
개울을 건너뛸 때 박이 떨어진 걸 모르는 바보아들은
거기 매달린 박꼭지를 보고 얼른 대답했죠.
-꼭지씨요!
-이야기를 사는 가게 이바구
20. 유성우 별똥별쇼
새해맞이
유성우 쇼를 예고합니다.
쇼 개막은
한 해가 마무리 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12월 31일 밤.
세계 3대 유성우 쇼 중의
가장 멋진 사분의자리 별똥별 쇼에
여러분을 특별히 초대합니다.
최고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별들의 눈부신 낙하 기술입니다.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거나,
곤두박질치는 기술에 감탄하실 겁니다.
팝핑 별 캔디를 뿌리는 멋지고
달콤한 새해맞이 쇼,
절대 놓치지 마세요.
-별똥별쇼 진행위원회
‘상상 동시 가게’ 연재를 마치며
지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이번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동시 20편으로 나름대로 ‘상상 동시 가게’라는 새로운 장르의 한 모퉁이를 보여드렸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동시먹는 달팽이>의 귀중한 지면을 허투루 사용하면 어쩌나 하고 고심했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상상 동시 가게’에 대한 호응이 나쁘지 않았고, 미력하나마 선배로서의 역할도 조금 한 것 같아 연재를 마치는 지금,
마음이 가뿐합니다.
‘상상 동시 가게’는 동시집 <상상 동시 몰>이라는 이름으로 내년쯤 출간 예정입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과
또한 지면을 주신 <동시먹는 달팽이>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총총
<동시먹는 달팽이>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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