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철이 다가오고 있다
권영상
4월 중순이 지나면 모종 철이다.
해마다 모종을 내 보지만 하루 먼저 내는 것과 나중 내는 것의 차이가 크다. 종국에 가서야 뭐 그게 그거지만 초봄엔 모종의 하루해가 티나게 다르다. 더구나 일찌감치 밭 정리를 해놓고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모종도 서두르게 된다.
처음 몇 해는 모종 철이 오면 주로 읍내에 나가 상추며 쑥갓 겨자, 오크 등을 샀다. 모종가게 진열대에 내놓은 예쁜 모종들을 보면 그것만으로 성이 안 차 신선초니, 당귀, 삼채, 부추 모종까지 가지가지 사다가 심었다. 그러느라 손바닥만한 텃밭이 온통 채소 모종으로 가득할 때도 있었다. 철없는 농사꾼의 욕심이 부른 화다. 식구라곤 셋인데 채소는 한밭 가득이었다. 그해 상추며 쑥갓 당귀 꽃이 가득 핀 우리 집 텃밭은 동네 분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차츰 농사일에 익숙해지면서 내 손으로 온상에 씨앗을 넣고 모종을 키워 텃밭에 냈다. 올해는 날이 풀리는 3월 20일. 예년처럼 남녘 텃밭에 비닐 온상을 조그맣게 만들었다. 반은 꽃씨를 심고, 반은 상추며 쑥갓 등속의 씨앗을 넣었다.
온상을 돌보는 일은 이때부터다.
그 무렵의 낮 기온은 대개 영상 10도 안팎이며 밤은 빈번히 영하로 내려간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씨앗들은 발아를 멈춘다. 발아를 멈춘 채 오래 흙속에 묻혀 있으면 대부분 썩는다. 그 탓에 해질 무렵이면 부직포를 꺼내어 온상을 덮어주고 해 뜰 무렵이면 봄볕을 쬐라고 덮어준 부직포를 걷어낸다.
시간이 나면 짬짬이 온상을 찾아가 비닐을 걷고 물을 주고, 그리고 그 앞에 앉아 마치 씨앗들의 숨소리라도 들을 듯 잔뜩 몸을 숙여 심은 자리를 들여다본다. 농사일에 익숙한 분들이 나를 본다면 내가 하는 일이 너무도 철없어 보일 테다. 물을 주면 저절로 클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파릇한 새싹이 나올 때면 그들이 정말로 반갑다. 그들이 나의 보살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놀랍고, 내 손의 대견함에 무엇보다 내가 놀란다. 내 손이란 어떤 손인가. 직장이랍시고 도시에서 오랫동안 밥벌이에 길들여진 무색무취의 손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어본 적 없는 손이다. 그 손이 파란 생명을 이끌어 올리는 손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나는 내 손의 희망을 본다.
내 손에겐 아직 연두색 봄을 틔워 올릴 힘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직은 내게 희망적이다. 누군가의 생명활동에 내 손이 직접 관여한다는 이 기쁨은 적은 게 아니다.
상추씨는 신문지로 햇빛을 차단해주면 3일이면 나온다.
상추씨가 나오면 그걸 시작으로 쑥갓이며 비트 케일 오크 호박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다. 꽃씨를 넣은 쪽에선 채송화 백일홍 과꽃 프렌치 마리골드 해바라기 차례다.
씨앗을 넣은 일주일간은 온상 곁을 비울 수 없다. 서울에 일이 있어 정 올라가야 할 때면 물을 흠뻑 주고 한낮 열기로 화상을 입을까 싶어 온상 모서리마다 여러 개의 공기통을 만들어준다.
“닷새 뒤에 내려오마!”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겠다.
씨앗을 싹 틔우고 키워내는 일의 진지함이란 언제나 가슴 벅차다. 모종 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들을 텃밭에 내는 날, 나는 내 손의 고귀함에 또 한 번 가슴 벅찰 것이다.
<교차로신문> 2023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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