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 문학상 수상소감>
나는 무엇에 전부를 걸었던가
권영상
아내가 언니집에서 창포 네 뿌리를 얻어오던 날 수상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언니집 창포 꽃이 너무 예쁘더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 아내의 속내에는 수상을 기뻐하는 마음이 배어있었습니다.
내년에는 창포 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꽃도 잠깐이라 말하지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물러 있어보니 알겠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건 잠깐이 아닙니다. 잠깐인 것은 이런저런 핑계로 딴 데 정신을 파느라 미처 봄을 대면하지 못한 우리의 불찰 때문이지요.
마을에 살구꽃이 피면서부터 지금 모란과 함박꽃이 피기까지 봄꽃은 이어서 이어서 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꽃은 하나하나가 그렇게 정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고울 수 없습니다.
그 꽃들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나의 봄날도 저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웠는지 돌이켜 봅니다. 꽃들은 봄날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듯 핍니다. 꽃이 지고 난 뒤의 나무들의 수척한 모습을 보면 압니다. 나는 나 자신의 봄날을 위해 무엇에 전부를 걸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아내가 가져온 창포도 내년이면 자신의 전부를 바치듯 파란 창포 꽃을 피워낼 테지요. 오늘 남쪽에서 날아온 이주홍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으며 글쓰기에 내 전부를 바치지 못한 게으른 저를 자책합니다. 향파 선생께선 나라를 빼앗긴 시절, 위험한 적의 땅에서 민족의 역사를 가르치셨고, 고국 땅을 밟으셔서는 문학을 위해 모든 장르에 몸을 던지셨습니다. 고귀한 그 분의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릅니다.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 테지요. 동네 골목길이든 놀이터든 어린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 이쪽 편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시를 씁니다. 제가 쓰는 이 시들이 공부라는 이유로 빠르게 세상에 길들여져 가는 어린이들과 동심을 지키려는 어른들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겨주신 공재동, 박일, 소민호 세분 심사위원님과 이주홍문학관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권영상
*강릉의 초당 출생
*197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년중앙문학상>, <한국문학> 등으로 당선
*<엄마와 털실뭉치>,<둥글이 누나>, <구방아, 목욕가자> 등 70여 권의 동시 동화집 출간
*<세종아동문학상>, <mbc 동화대상>, <소천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음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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