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함에 나를 던진다
권영상
하늘이 잔뜩 무겁다. 금방이라도 비 오겠다. 휴대폰 날씨 앱을 열었다. 곧 비다. 두 시간 동안 20밀리. 비 온다는 데도 나는 마치 비 마중을 가는 사람처럼 서둘러 집을 나와 산을 향한다. 이럴 때에 보면 나는 좀 무모하다.
산중턱에 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거칠다. 솔숲을 빠져나와 참나무 숲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빗소리는 세차다. 이제 한창 피는 참나무 속잎들은 즐겁다. 환호하듯 비명을 지른다. 숲이 온통 축제 분위기다. 내 몸도 그렇다. 비가 옷 속을 파고들어 나를 간질인다. 머릿카락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춤추듯 이마를 타고 굴러내린다. 몸을 적시는 5월 비의 느낌이 좋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머리 위에서 쿵쾅거린다.
요 몇 해 전이다.
설악에서 비를 만났을 때다. 큰산에서 비를 만나는 일은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비란 하루 날씨 중의 한 가지 현상이니 그걸 맑은 날씨와 따로 떼어 생각할 일이 아니다.
수렴동 계곡에서 오세암 가는 길로 막 들어서는데 아름드리 전나무 숲 사이로 비가 내렸다. 우비를 꺼내 배낭을 덮었다. 오세암이 가까워지면서 비가 거칠어졌다. 나는 지치지 않고 걸어 오세암 안마당을 지나쳤다. 오세암이라면 내가 대피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이후엔 비 피할 곳이라곤 없다. 남은 길은 동해에서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의 마등령뿐이다. 그때에도 나는 좀 무모했다. 폭우가 내리치는, 의지가지 할 데 없는 마등령에 나를 내던졌다.
1300여 미터 마등령에 올라서면서부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내가 기댈 곳은 벌거벗은 바위들뿐이다. 천둥벌거숭이란 말이 그럴 때 쓰는 말 같았다. 머리 위에 사나운 맹수를 두고 내가 홀로 산등성이를 가고 있었다. 번개가 두려우면 번개를 피해 바위에 몸을 숨기며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걸었다. 가끔씩 보이던 인적도 모두 사라진, 천둥을 만들어내는 구름 속에 나홀로 머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마치 죽음을 엿보러간 사람처럼 눈을 파랗게 뜨고 바윗길을 걸었다.
세존봉을 지나서야 천둥도 그치고 빗소리도 잦아들었다. 동해에서 몰려 올라오던 짙은 안개 구름이 걷히면서 동해와 속초 시내가 산뜻한 화면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이쪽 공룡 능선과 저쪽 멀리 중청봉도 그 위엄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 끝은 눈부시고 장엄하다.
마치 죽음의 골짜기에서 되살아난 기쁨이 이러할까.
비 오기 전과 전혀 딴판인 세상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좀전까지 나는 때에 절은, 아주 오래된, 이승의 고된 길을 걸어왔고, 비 끝엔 이승이면서도 이승 아닌 것도 같은 전혀 낯선 세상을 걷는 기분이었다. 금강굴에서 천길 아래로 걸어내려오는 비선대 가는 그 너덜바윗길은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올 때처럼 낯설고 아득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 폭설이 내리면 폭설 내리는 산으로 기어들고, 폭염이 엄습하면 폭염 속에 들어가 폭염과 마주하는 무모함에 종종 빠져들곤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조차 나는 좀 무모하다. 그것이 위태로운 줄 알면서 그 무모함에 나를 던진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 무모함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론 실수도 많았지만 그것이 내 근성이 되어왔음도 안다.
우면산을 돌아 내려오는 길 위에 흙탕물이 흐른다. 그 사이 비가 많이 내린 모양이다. 불과 두 시간 남짓한 길인데 마치 한 세상을 살다나온 것처럼 내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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