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문체로 씌여진 소화력 좋은 빵, 엄기원 동시집
권영상
엄기원 시인은 1937년 강릉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니 올해로 글 쓰신지 근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 사람이 동시라는 한 분야를 평생 다루고 가꾼 셈입니다. 오직 어린이문학에 충실히 복무한 시인입니다.
엄기원 시인은 저의 고향 선배이시고, 또 문단의 아주 높은 선배이십니다. 제가 처음 동시를 배울 때도 선생님의 동시를 통해 익혔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이 자리에서 ‘엄기원 시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매우 주저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이 말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이 글을 부탁해 주셨고, 제가 이 글을 머뭇거림 없이 받았다는 게 그 죄임을 먼저 밝힙니다.
엄기원 동시는 분명히 다른 시인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 소재를 어린이의 삶 속에서 그대로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쉬운 말로 찬찬하게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시이며, 번잡한 수식과 기교를 피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읽어가는 순간 들려주는 시의 목소리에 빠져들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동시집 <팔랑개비>를 읽고 났을 때 잠시동안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엄기원 시인의 시들과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시를 대하는 태도나 소재를 해석해내는 방식이 매우 폭넓고 거대해졌다는 점입니다.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달콤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동시집들이 다양하게 많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화해되지도 않은, 충분히 녹아들지도 않은 말로 가득찬 동시집들이 많습니다. 그런 시의 세상에서 만나게 된 이 동시집은 쉬운 문체로 씌여진 소화력 좋은 빵과 같았습니다. 한 끼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아주 넉넉한 양입니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바삭바삭하고, 때로는 단단하여 그 맛을 즐기기 좋습니다. 혼자 조용히 먹기에도 좋고 여럿이 둘러앉아 즐겨도 좋을 시집입니다. 쉬운 말로 조직되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 음미할 세계가 큼직합니다. 거기엔 자연의 손길,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 사람이 옳게 사는 법, 해학, 우리 말에 대한 애정 등이 소복소복 담겨있습니다.
1. 자연의 크신 손길
우주는 얼마나 클까요?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충 과학자들의 말로는 약 3천여 개의 은하계로 이루어졌다고들 합니다. 그 안에 있는 별은 몇 개나 될까요? 과학 잡지에서 본 바로는 지구에 있는 모래의 약 3천 배나 된다고 합니다. 3천여 개니, 3천 배니 하는 말은 어쩌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큰 별을 우주는 어떻게 간수할까요?
바다는 그 많은 물을
한데 모아
상하지 않게 짭짤하게
간을 해 두고
그래도 상할까봐
시원한 바람으로
출렁출렁 흔들면서
그래도 상할까봐
물고기떼 키우고
물풀을 키우면서
잘도 간수하고 있네.
바다는
그 많은 물을.........
-<바다는 그 많은 물을>의 전문
바다는 ‘그 많은 물’을 이렇게 간수합니다. ‘상하지 않게 짭짤하게/ 간을 해 두’어서, ‘상할까봐 출렁출렁 흔들어서’, ‘물고기떼 키우고/ 물풀을 키우면서’ 바닷물을 간수합니다. 어려운 대답을 이렇게 쉽고, 유머있게, 동심의 눈으로 그럴 듯 하게 풀어냅니다. 여러 개의 스토리로 바다가 물을 간수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 스토리들을 모두 벗겨내면 남는 것은 바다가 ‘큰 존재’라는 의미만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다가 큰 존재가 되려면 큰 그릇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담고 있는 바닷물이 슬프지 않게 잘 간수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능력이야말로 자연이 발휘하는 ‘크신 손길’일 테지요. 그 크신 손이 있어 산맥은 산맥을 간수하고, 강은 강을 간수하고, 하늘은 하늘을 간수하지요. 우주도 또한 그렇겠지요. 가졌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가진 것의 가치를 살려낼 때 그가 진정 ‘바다’같이 큰 존재입니다.
2.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 갖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빛의 세상입니다. 빛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힘을 가진 가장 큰 에너지 원이지요. 빛이 없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들은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만큼 빛은 소중하지만 그 빛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늘이 생깁니다. 그 그늘에서도 생명들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눈길을 받지 못하는한 외롭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쓸모없는 것들인가요? 아니라지요. 오히려 우리 눈에 작게 보이는 것들이 우리가 살아갈 땅의 탄탄한 배경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푸라기’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라도
별 대접 받지 못하는
‘지푸라기’
시골 농삿집 마당이나 뒤란에
혹은 길거리 개똥밭에
밟히고 날리는
그렇게
그렇게
대접 받지 못하는데
사람들은
마지막 위급한 지경이면
꼭 찾는 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
-<지푸라기>의 전문
이 시의 중심 소재는 ‘지푸라기’입니다. 지푸라기를 사전에 찾아보니 ‘부서진 짚의 부스러기’라고 나와 있습니다. 부스러기란 하찮거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관심 밖에 나 있는 이를테면 그늘에 묻힌 존재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지푸라기를 ‘별 대접 받지 못한’다거나 ‘길거리나 개똥밭에 밟히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후반에 가면 그 지푸라기를 위급한 지경에 처한 사람을 살리는 매우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시의 재미는 그런 뒤집기에 있습니다. 그런 극적 전환 때문에 더욱 ‘지푸라기’에 대한 가치가 긴장감 있게 살아납니다. 이 동시집에는 이처럼 소박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다룬 소재는 많습니다. 잡초, 흙, 탱구, 참새, 개똥벌레, 낡은 가구, 벼룩시장..... 등의 소재들은 모두 시인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눈길에 채여 새로운 이미지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특별하지요. 어쩌면 이 말은 엄기원 시인의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독특한 눈길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3. 어떻게 사는 게 좋은가
시 속에는 당연히 동시의 독자인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 사회이건 시인은 그 사회라는 현실을 작품속에 드러낼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문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엄기원 시인은 직설적인 방법이 아닌 우회적인 방식으로 은근히 어린이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시의 문학성은 현실을 시속에 반영할 때 더욱 아름다워지고 감동을 줍니다. 인생을 잘 살아낸 한 시인의 숨겨진 사는 법이 궁금하겠지요?
나 어렸을 적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오줌 누는 것도
깜빡 잊고
밥 먹는 것도
깜빡 잊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학교 숙제도
깜빡 잊고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깜빡 잊고......
나는 그렇게 자랐지요
-<깜빡 잊고> 전문
아니,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오줌도 안 누고, 밥도 안 먹고, 숙제도 안 하고,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못 달아드린 게 뭐 잘한 일이라고 자랑하는 건가요. 이 시는 겉과 속에 숨어있는 뜻이 서로 다릅니다. 이 시가 말하려는 것은 지금 어린이들은 너무 공부, 공부에 빠져 놀지도 못한다는 점을 꼬집는 겁니다. 이 시속의 화자인 ‘나’는 ‘노는 데 정신이 팔렸던’ 시대를 제시함으로서 반대로 요즘의 어린이들의 놀지 못하는 현실을 은근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고발 속엔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법도 제시합니다.
어떤 삶이 바른 삶일까요?
“종수네 집도/ 복실이네 집도/ 헐벗은 울타리/ 넓은 집이지만// 하루종일/ 햇볕이 자르르/ 바람이 살랑살랑/ 사람과 검둥개와 토종닭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네.”
엄기원 시인은 사람과 개와 닭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지요. 적절한 휴식과 놀이, 그리고 공동체적 삶은 오늘의 어린이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야 하는 가에 대한 대답이며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4. 해학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아시는 분은 벌써 알고 계실 겁니다.” 라던가 “지난 8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니 8월이 아니었군요. 7월 말이었군요. 하여튼 강원도 삼척 어느 산골에 웬 할아버지 한분이 있었는데......”
엄기원 시인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꼭 실화처럼 듣는 이를 이야기속으로 끌어들이지요. 한참을 듣고 보면 그게 꾸민 이야기라는 들통이 납니다. 그 들통 때문에 한바탕 웃지만 그 웃는 재미 때문에 이야기가 달콤한 맛을 냅니다. 점잖키로 한다면 선비처럼 점잖은 분이시면서 익살 또한 은근하기 짝이 없습니다.
토끼보다
작은 놈이
어쭈구리
제법
호랑이 모습을......
“야옹-”
이게 무슨 소리야?
“어흥!”
해야지.
-<고양이> 전문
고양이를 좀 보아요. 그 겉모양은 ‘어쭈구리’ 호랑이를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화자는 그 하는 짓이며 우는 울음마저 호랑이를 닮았으리라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야옹.”하고 웁니다. 이 뜻밖의 울음소리에서 시속의 화자가 익살을 떱니다. “어흥!” 해야지, 하고 말이지요. 해학은 한 순간, 가급적이면 짧은 발화나 동작으로 이전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흥!” 이 두 음절이야말로 해학의 요체이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핵심입니다. 조그마한 고양이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려면 시인의 본성 자체가 열려있고 익살스러워야 합니다. 해학은 이처럼 호랑이 모양을 한 고양이의 결함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의 그 우스꽝스런 웃음이 폭소가 되어 잠시만이라도 고단한 순간을 잊게 하는 것이 해학입니다. 엄기원 시인의 또 다른 해학시로는 ‘오줌내 나는 팬티’를 빨아주는 “세탁기”, ‘쥐방울만한 게 까부느냐’는 <쥐방울> 등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5. 우리 말에 대한 애정
시인이 모국어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모국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에 결합되는 이미지와 운율과 철학적 생각과 주제는 모두 시인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 주는 동시는 순전히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운 모어여야 합니다. 순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무릎에서 배운 말이라고 꼭 표준어가 아닙니다.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조차 그러니까 모두 소중한 우리 말입니다.
할머니는
‘바람개비’를
‘팔랑개비’래
내가 틀렸다고 해도
계속 팔랑개비래
내가 슬슬
따라해 보니
표준말 ‘바람개비’보다
사투리말
팔랑개비가 더 좋아
진짝 팔랑개비 같애
-<팔랑개비> 전문
할머니가 쓰시는 ‘팔랑개비’가 ‘틀린’ 말이라는 걸 표준어를 배운 ‘나’는 압니다. 그러나 몇 번인가 ‘팔랑개비’를 말해 보면 오히려 그 말이 ‘바람개비’보다 더 바람개비 같다는 내용입니다. 팔랑개비, 팔랑개비, 팔랑개비! 자꾸 말해 보세요. 왠지 입안에서 운율이 생기면서 푸른 바람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사물의 이름은 그 사물의 성질에 가장 가까울 때 친근감을 얻게 되지요. 사투리는 표준말이 생기기 전에 만들어진 말이므로 당연히 사람들과 더 오래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지요.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민중들의 입맛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표준말만이 아니라 사투리(방언)까지도 시인이라면 소중히 할 줄 알아야겠지요.
특히 우리 말은 소리말이기 때문에 바람개비보다 팔랑개비로 읽힐 때가 더 운동성에 가깝습니다. 받침이 유성자음과 모음으로 끝나기에 더 예쁘고 운율감이 살아나지요.
다른 시에서도 엄기원 시인은 우리 말의 가치와 그 가치의 소중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밌다 우리 말’의 마지막 연 ‘두 발 가진 새는 꽁지/ 네 발 가진 동물은 꼬리/ 아하! 우리 말 참 재밌다.’나, ‘참’이라는 시의 ‘이렇게/ 좋은 우리 말/ 또 없을까? 세상에.’가 그렇습니다. 우리 말의 재미와 음악성을 살려내는 일은 고스란히 시인의 몫입니다.
엄기원 시인의 시에는 허투루 넘길 시가 한 편도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빵과 같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과 해석 방식 또한 이전의 시와 다르게 매우 신선하며, 그 상상의 세계 또한 폭넓습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소외된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 등의 시들이야말로 한 이랑 한 이랑 밀밭에 선 밀대궁이처럼 잘 가꾸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면 때문에 다루지 못한 멋들어진 우리 시조 7편도 실려있습니다. 엄기원 시인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 점에서 다음 동시집의 또다른 모습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엄기원 동시집 <팔랑개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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