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감각과 깊이의 조화 – 책 「아, 너였구나!」

권영상 2020. 9. 28. 19:20

감각과 깊이의 조화 – 책 「아, 너였구나!」

 

자녀교육자료

2017. 8. 3.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EBS 교육방송에서 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가족의 발견(2014) 부모-부모광장 (2015) 프로그램을 소개하여 왔습니다. 맞벌이 부부, 장수하는 노인들, 저출산 등으로 생산가능인구(만 15세부터 64세까지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국가의 장래를 우울하게 합니다. 문제는 가족의 일탈현상으로 범죄가 차츰 늘어나고 있어서 우리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 마련하여 왔었는데, 이제부터는 좀더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교육정보 종합서비스망인 에듀넷을 통하여 지도 자료를 제공받아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명언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나아가 「학교는 졸업할 수 있어도 도서관은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을 실현하여보자는 소박한 꿈으로 방향을 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발간한 책이야기」(2015 서평과 사서추천도서가 있는 책, 2015년 12월 31일 발행)에서 전국민이 독서하는 그날까지 독서하는 생활이 자리잡도록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 및 수록범위를 살펴하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발행하는 도서관 이야기,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서평’과 ‘사서추천도서’ 원고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그림ㆍ동화책, 동시, 청소년ㆍ문학 외로 장르를 구분하여 유아, 초등저학년, 초등고학년, 청소년으로 대상을 구분하고, 각 대상 내에서 문학과 문학 외로 분류되어 있어서 매주 1권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독서교육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과 함께 친구처럼 벗이 되도록,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나도록 책과 친해봅시다. 감사합니다.

 

감각과 깊이의 조화 – 책 「아, 너였구나!」

 

 

권영상의 열여섯 번째 동시집 『아, 너였구나!』는 시력 36년이 되는 시인의 동시집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젊은 감각이 발휘된 작품을 적잖이 만날 수 있다. 이번 동시집에서는 시인 특유의 날렵한 감각에 오랜 연륜에서 말미암았을 깊이까지 담아낸 작품이 여럿 발견된다. 「수세미꽃 핀 집」, 「창문」, 「나비」,「물총새」, 「폴짝, 폴짝, 폴짝」, 「작은 의자」, 「고불고불」, 「여름밤 하늘」, 「달력을 넘기며」 등은 권영상 동시가 도달한 높이와 깊이를 맛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 꼽을 만하다.

 

지나간 달을 넘기고
새 달을 받는다.


이 아침
나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서른 개의
깨끗한 날을 받는다.

 

달걀 한 바구니처럼
굵고 소중한 선물.

 

어미 닭이 달걀을 품듯
서른 개의 날들이
서른 개의 꿈으로 깨어나게 될 일을
곰곰 생각한다.

 

  - 「달력을 넘기며」

 

시인은 한 달 서른 날이 담긴 달력을, 한 판 서른 알이 담긴 달걀 한 바구니로 등치시킨다. 달력이 달걀 바구니가 되는 순간, 달력에 담긴 하루하루는 달걀 바구니에 담긴 한 알 한 알의 달걀처럼 굵고 소중하며,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깨끗한 날로 바뀐다. 그러니 이 소중한 서른 개의 아침을 받아 든 시인으로서는 어미 닭이 달걀을 품듯 온 정성을 다해 이 하루하루를 서른 개의 꿈으로, 서른 개의 생명으로 품고, 깨우고, 길러 낼 일을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하루가 아닌 것이고, 그냥 한 달이 아닌 것이다. 하루하루는 저마다 고유한 개별성을 간직한 생명의 알이어서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사랑으로 품고 정성으로 돌보아 하나하나 생명의 날로 깨어나게 해야 한다. 무겁되 무겁지만은 않고, 숙연하되 숙연하지만은 않은, 두근두근 설레는 놀이 같은 책임이 이 마음에는 담겨 있다. 지나간 달은 그렇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허투루 보람 없이 보냈을 수도 있다.

 

 

좋은 시 하나, 좋은 일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고 후회와 무기력 속에 보냈을지도 모른다.
새 달을 받는 마음이 이처럼 각별한 것은 지난달의 뼈아픈 실패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지난달은 넘기는 것이고, 새 달은 받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을 것이다. 맞는다고 하지 않고 받는다고 한 바탕에는, 새 달이 불가능한 기적처럼 주어진 것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다. 살다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도모하기조차 불가능한, 그냥 넘겨 버리는 것만 해도 대견한 날들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달이 바로 그랬다. 어쩌면 지난 1년이 바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 그저 지나가 주기만을 묵묵히 견뎌 내야 했던 시간. 이것마저도 지나가리라, 스스로를 달래며 쓴 약을 마른 목구멍 속으로 꾹꾹 떠넘겨야 했던 시간. “지나간 달을 넘기고”라는 말을 긴긴 고통을 감내한 자에게 기적처럼 주어진 새로운 시간의 출발로 읽을 때, ‘새 달을 받는’ ‘이 아침’의 ‘나’에게 시간이 비물질적 추상성을 벗고 ‘달걀 한 바구니’라는 물질적 구체성을 입고 자기를 드러내 준 연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나비들이
소 발자국에 고인
빗물에 모인다.

 

나비 날아간 뒤에
가 보니
거기 하늘이 있다,
파란.

 

그쪽 나라로 가는
창문인 줄 알았나 보다.

 

    - 「창문」

 

개미 한 마리가
달달달
빈 방바닥을 헤맨다.

 

서툴기는 해도
이 아침,
홀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 「개미」

 

개울물 따라나섰다가
물총새는
강물을 봤지.

 

푸르고 깊은
강물.

 

강물을 따라나섰다가
물총새는
그 끝에서 바다를 봤지.

 

파아란.

 

  - 「물총새」

 

세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탐색하는 존재들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 ‘빈 방바닥’, ‘개울물’이 ‘지나간 달’의 자아의 모습이었다면, ‘소 발자국에 고인/ 빗물’에서 ‘하늘’과 ‘창문’을 발견하고, ‘서툴기는 해도’ ‘홀로 길을 만들어 가고’, ‘강물을 따라나섰다가’ ‘그 끝에서 바다를’ 보는 것은 ‘서른 개의 날들이/ 서른 개의 꿈으로 깨어나게 될 일을/ 곰곰 생각’할 줄 알게 된 새로운 자아의 모습이다.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에 새로운 세계를 향한 꿈과 도전을 담아 어린이 독자의 성장을 티 나지 않게 응원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권영상 동시의 시적 주체는 이 세계가 어린 생명들을 그저 나 몰라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적 협력의 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하여 따뜻한 품 안에 보호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 준다.

 

숲 속 참나무 둥치에
딱따구리가
호주머니를 만들었다.

 

다 자란 봄이
참나무 호주머니에서

 

폴짝!
폴짝!
폴짝!

 

새끼 딱따구리를 꺼낸다.

 

  - 「폴짝, 폴짝, 폴짝」

 

새끼 딱따구리가 다 자라 참나무 둥치에서 나오는 것을, ‘다 자란 봄이/ 참나무 호주머니에서’ ‘새끼 딱따구리를 꺼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 너였구나!』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고 즐길 수 있는 좋은 동시집이다. 권영상 시인 특유의 시적 감수성이 동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현된 수작을 다수 만날 수 있다. 감각과 깊이가 여러 작품에 조화롭게 담긴 동시집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출처 : 에듀넷>독서교육인문소양교육>독서교육자료 – 2015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