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시어의 변용-하청호

권영상 2020. 12. 8. 18:48

 

 

<하청호 동시집 해설>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시어의 변용-하청호

권영상

 

 

오래 전, <연필시> 동인활동을 하며 하청호 시인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지요. 하청호 시인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그보다는 ‘하청호 선생님’이라는 지칭이 옳습니다. 그분은 문단과 교단과 또한 인생의 선배이시고, 저 또한 통상 그렇게 부르며 가까이 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이 자리에서는 자칫 정분으로 흐를까 싶어 외람되이 ‘하청호 시인’, 또는 ‘시인은’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때, 그러니까 <연필시> 동인활동을 할 때, 제가 하청호 시인에 대해 받았던 인상은 모던한 풍모에 격조 있는 화술과 내면이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시 또한 곡진한 정감이 배어있는 서정시 풍입니다. 그때 하청호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네요.

 

“내밀한 언어를 품은 사물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재미.”

그게 시를 쓰게 하는 기쁨이고 또 위안이다, 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기억을 더듬으며 하청호 시인의 시의 오솔길에 들어섭니다.

과거의 동시집들도 그렇지만 이번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에 수록된 동시들 역시 시인은 농경적 삶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인의 동시집 속에는 여전히 산수유가 피고, 봄이면 뒷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고, 가을이면 연붉은 감이 단물을 익히는 곳, 그곳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형 동생 아기동생이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지요. 시인의 시는 이런 풍요한 시공간 안에서 태어나 무르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지요. 이 변함없는 곳이야말로 어쩌면 시인의 마음 안에 자리한 이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안에서 시인이 언어를 통해 가 닿으려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윗대와 아랫대 간의 지극한 사랑과 그리움입니다. 이것이 잘 정제된 조형적 시어로 이 한 권의 동시집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네요. 이전의 동시집들에서 볼 수 없었던 시어의 새로운 시적 변용입니다.

 

 

1. 배려

 

작은 개미 한 마리

여름 땡볕 속을 갑니다.

 

작은 풀잎 하나

여린 잎새를 뻗어

작은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자

다른 작은 풀잎들도

어깨를 겯습니다.

 

개미에게

작은 그늘길을 만들어 줍니다.

 

여리고 약한 것들이

해님을 가렸습니다.

작은 것들이, 작은 것들끼리

 

    -‘작은 것들끼리’

 

눈 내린 날 아침

하얀 눈은 빨간 산수유 열매에서

제일 먼저 녹는다

눈으로 뒤덮인 들과 산

배고픈 텃새들이

하늘에서 재빨리

산수유 열매를 찾을 수 있게

제일 먼저 녹는다.

 

     -‘흰 눈과 빨간 산수유 열매’

 

 

앞의 동시 ‘작은 것들끼리’는 하청호 시인의 다섯 번째 동시집 <잡초뽑기>(도서출판 대일, 1986)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작품은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에 수록된 동시입니다. 어떤가요?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인의 시 의식 속에 변치 않고 맑게 찰랑대고 있는 것은 약자에 대한 지극한 배려입니다. 그 옛날에도 시인은 땡볕 속을 가는 작은 개미를 눈여겨보았고, 지금도 눈 내린 날의 배고픈 텃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배고픈 텃새 눈에 잘 띄도록 산수유 열매에 얹힌 눈이 제일 먼저 녹는다는 색채대비 표현이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네요. 그 까닭은 그것이 눈으로 발견한 순간의 진실이기보다 마음으로 발견한 진실이기 때문에 더욱 곱고 아름다운 것이지요. ‘내밀한 언어를 품은 사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시를 빚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입증되는 셈이네요.

 

2. 그리움

 

-자작

-자작

하얀 자작나무가 탄다

 

-자작

-자작

눈 내리는 산골 집에

누가 오시나

 

강아지가

싸리문으로

길게 목을 뺀다.

 

    -‘누가 오시나'

 

 

사막에서 일하는 아버지

저 멀리 있는데

단풍은 뒷산까지 왔네

 

이제 앞마당

연붉은 감에도

단물이 들 시간

 

감잎 떨어지기 전

꼭 온다는

아버지 생각에

내 마음에도

단물이 드네.

 

      -‘기다림’

 

자작나무 숲이 가까운 산골에 눈이 내립니다. 눈은 ‘자작자작’ 내려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지웁니다. 펄펄 눈 내리는 이런 날이면 알 수 없는 그리움 하나 오도마니 일어나지요. 행여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파릇한 예감. 시속 화자는 실낱같은 예감이 있어 추운 방에 ‘자작자작’ 자작나무 불을 지핍니다. 그 마음을, 함께 살아온 강아지가 모를 리 없지요. 시 속 화자 대신 싸리문 밖을 슬며시 내다봅니다. 고적하고도 정갈한 겨울풍경이 애틋하게 배어나는 시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기다리는 그분이 누구인가 했는데 집에서 멀리 떠나가 있는 아버지였네요. 아버지는 감나무 감잎이 떨어질 때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을 떠났지요. 그런데 벌써 그 약속의 날이 임박했습니다. 시인은 그걸 ‘단풍은 뒷산까지 왔네’ 라며 설레임을 감추지 못 합니다. 그리고 연붉은 감에 단물이 들듯 그리움이 내 안에 차오르고 있음을, 얼른 만나고 싶은 속내를 그렇게 은근히 에둘러 표현하네요. 곡진한 부정을 그려낸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속 아버지가 어쩐지 사랑하는 연인처럼 읽히기도 하여 읽을수록 깊은 감정의 골짜기로 빠져들게 합니다. 모처럼 잘 익은 서정시 한 컵을 마시고 난 기분입니다.

‘나에게는/ 우체국 하나 있네 –중략- 나만의/ 우체국 하나 있네.’

이 동시집의 표제시인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 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우체국은 시인의 세상을 향한, 좀 더 좁혀보자면 지금은 안 계신 시인의 아버지를 시로 만나는 통로의 또 다른 은유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3. 사랑

 

짝꿍이 한 말이

마음에 가시로 박혔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아팠다

 

집으로 가는 길

앞서가던

짝꿍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마음 속 가시가

쏙 빠졌다.

 

        -‘가시 하나’

 

 

땅이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의 맨발이다

 

봄 햇살 속을

아이들이

맨발로 달린다

 

땅은 아이들의 발을

퉁-퉁 튕겨준다

트램펄린처럼

 

스프링 같은

봄날이다.

 

     -‘맨땅의 맨발’

 

 

앞의 시 ‘가시 하나’는 이런 시입니다. 짝꿍이 내게 한 말이 내 마음에 가시로 박혀 있어 나는 그 가시를 떠올릴 때마다 아프지요. 그러나 어느 날, 짝꿍의 손을 잡으면서 내 마음의 가시도 빠졌다는 이야기네요.

이 시 속 ‘나’가 내 마음에 가시를 박은 짝꿍의 가시 손을 꼭 잡는 순간, 문득 길가메시의 ‘붉은 떨기나무의 가시’가 떠올랐습니다. ‘네 손이 가시를 잡으면 그 순간 너는 영생을 보리라’는. 가시는 아픔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러나 내 가슴에 가시를 박은 짝꿍의 가시 손을 잡는 그때 우리는 아픔을 잊고 그 이전의 우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요.

떨기나무의 가시를 움켜잡는 일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깨어진 사랑을 되돌리거나 틀어진 우정을 회복하는 데에도 가시를 잡는 용기가 절실함을 깨우쳐주는 시입니다.

 

‘맨땅의 맨발’에는 두 개의 주체가 있습니다. ‘땅’과 ‘아이들의 맨발’입니다. 땅이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의 맨발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봄 햇살 속을 맨발로 달리는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둘은 아무런 갈등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그 즉시 신나는 사랑의 관계로 진입하지요. 트램펄린처럼, 봄날의 스프링처럼, 축제 같은 행복감 넘치는 시입니다. 그런 행복은 맨발일 때에만, 그러니까 영혼이 순수해질 때에만 가능한 거지요.

 

4. 변용

 

놀이터에서 들뜬 기분으로

집에 왔어요

엄마가 소파에 누워있었어요

 

-엄마, 어디 아파요

-아니, 그냥

 

-엄마는 기분이 아픈가 봐

 

동생의 말에 엄마는

우리를 꼭 껴안아 주었어요

 

엄마 기분이 나았다.

 

     -‘기분이 아프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네

할머니가 말했네

-저 많은 별은

딱따구리가 하늘에

구멍을 낸 것이야

 

반짝이는 별들

하늘구멍

참 많이도 뚫었네

 

     -‘하늘구멍’

 

 

다시금 말하지만 하청호 시인의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시도가 있습니다. 시어의 변용입니다. 문학을 하는 그 어떤 이에게서도 볼 수 없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분이 아픈가 봐’가 그런 유형입니다. 시의 내용상으로 보아 ‘기분이 아프다’는 말은 ‘기분이 매우 가라앉아 있다’는 뜻인 듯합니다. 일상 언어에서 ‘기분’은 ‘아프다’는 말과 호응하지 않지요. 그런 두 의미를 조합함으로써 기분을 우울증과 같은 질병으로, 또는 그 상태가 중하다는 또 다른 의미로 만들어냅니다.

이 동시집엔 그 말고 ‘마음꼬를 트다’(마음꼬를 트다), ‘눈치를 버리다’(눈칫밥), ‘귀도 맛을 안다’(귀도 맛을 안다), ‘눈빛으로 듣는다’(눈인사) 등이 있지요. 이는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이며,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하청호 시인의 새롭고도 독특한 시 작법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시인은 시어의 의미 구조 변용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전래되어 오던 친숙한 스토리마저 변용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하늘구멍’입니다. 시인은 할머니의 입을 빌려 하늘의 저 많은 별은 딱따구리가 부리로 쪼아낸 구멍이라고 말하지요. 견우가 살고, 목동이 살고, 우리의 운명을 주재하는 초월자가 사는 곳이라고 알아왔던 별은 어이없게도 딱따구리가 낸 구멍으로 그 서사가 바뀝니다. 어쨌거나 그런 변용으로 또 하나의 별 탄생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린이들은 낯설기 만한 동심의 세계로 상상의 날개를 펼 테지요.

 

제 5 동시집 <잡초뽑기>가 궁극적으로 ‘감자 익는 냄새가 품에서 나는’ 시인의 어머니에 가 닿아 있다면 30여 년을 건너뛴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는 ‘먼데 있는’ 아버지에 가 닿아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곳은 여전히 그 옛날의 산수유 꽃이 피고, 연붉은 감이 익고, 물꼬에 물을 보는 고향입니다. 하청호 시인의 시는 그런 배경에서 황홀하게 피어나 우리 마음을 따뜻이 감싸 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날으는 깃털처럼 하청호 시인의 동시집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를 스치듯 읽어오며 저의 우둔함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의 발간을 축하드리며, 하청호 시인의 시의 샘이 흘러 바다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하청호 동시집 <나에게 우체국 하나 있네> (상상) 2020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