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비 오는 날의 훈수

권영상 2019. 8. 15. 11:54

비 오는 날의 훈수

권영상





밤새도록 내리던 여름비가 아침에도 이어 내린다. 일어나 창밖을 본다. 세차게 내리던 밤비와 달리 기세가 많이 꺾였다. 아파트 마당에 고여 있는 빗물을 내다본다. 빗방울 떨어지는 자국이 작고 뜸 하다.

조그마한 우산 하나 챙겨들고 산으로 향한다. 비 오는 날에도 산으로 가는 나를 보면 아내는 산중독이라 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아침을 깨우기 힘들다. 비 온다고 출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비 온다고 바깥을 멀리 할 수 없다. 뭐든 한번 포기하기 시작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나 스스로 무너뜨린다.



뒷문을 나서 느티나무 오솔길로 들어서는데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치겠지 하고 작은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내 판단이 틀렸다. 오솔길이 끝나면 그 끝에 산으로 드는 입새가 나온다. 나는 거기까지 가며 몇 번이나 망설였다. 이대로 옷을 적셔가며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근데 이때가 아니면 언제 비 맞아볼 건데!’

내 안에서 누가 대담하게 소리쳤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신발이 젖고 옷이 젖으면 세탁하면 그만이다. 아내마저 멀리 떠나가 있으니 비 맞았다고 잔소리 들을 일도 없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용감하게 우산을 접었다. 비 안 맞으려고 우산 안에 몸을 옹크려 넣고, 신발 젖을까봐 비 웅덩이를 비키던 내 걸음이 달라졌다. 비는 맞으려 했고, 웅덩이 물은 첨벙첨벙 자꾸 밟으려 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온몸을 비에 맡겼다.

그러자 내가 숲에 선 나무 같고 바위 같아진다. 꿋꿋하게 산비탈을 지키고 선 나무들 모습을 내가 자꾸 닮아가려 한다. 나무들이 내뿜는 녹색의 기운을 내가 내뿜는 것 같다. 늘 받기만 하던 내가 주는 나무가 되어본다.

비에 젖어들면서 내 몸이 고적감을 느낀다. 귀가 예민해진다. 인적이 없고 새들의 흔적도 없다. 어제까지 이 숲을 들썩이던 매미소리도, 솔숲 근처에서 소란을 떨던 물까지도 없다. 빗소리마저 오히려 숲을 고적하게 한다.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삭정이 하나 툭 떨어진다. 고적감을 견디지 못하는 숲의 비명 소리 같다.



죽은 나무 등걸에 돋는 자잘한 참나무버섯들이 보인다. 풍등덩굴이 보이고, 빗방울에 잎을 떠는 개오동나무 꽃맹아리가 보인다. 오래전에 쓰러진 아카시나무 등걸에 빨갛게 피는 진홍간버섯도 눈에 번쩍 들어온다.

산 정상에 올라 얼굴 가득히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쳐다본다. 내 옷이 젖고, 내 몸을 타고 안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현실을 조금만 이렇게 이탈해도 몸은 금방 자유를 느낀다. 비를 실은 구름이 참고래 무리들처럼 동쪽으로 동쪽으로 마구 흘러간다.



이윽고 등산화 속에서 쿨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정강이를 타고 흐른 빗물이 등산화 속에 찬 모양이다. 그럴수록 빗방울 가득한 풀숲을 일부러 휘삼고, 일부러 나무를 흔들어 빗방울 세례를 받는다. 얼마나 오랜만에 비에 젖어보는 기쁨인가.

우리는 무슨 연유인지 그 동안 마치 비는 피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편리해진 교통수단 덕분에 비 맞을 일조차 없이 살아왔다. 그러느라 몸에 밴 것은 궂은 현실을 요령 있게 피하는 법이다. 사람이 살며 어떻게 힘든 일을 피하기만 하며 살 수 있을까.

비 많은 여름이 내게 가르쳐주는 이 아침 훈수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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