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권영상
산골마을 두노와 두이는 살던 곳을 떠나 아빠를 따라 도시로 이사를 가야합니다. 둘은 정들었던 산골마을을 잊지 않기 위해 개울물에 노는 모래무지 두 마리를 주전자에 담아 갑니다. 정성들여 보살펴주지만 좁은 주전자 속은 그들이 살 곳이 아닙니다. 결국 아빠를 설득해 고향 산골마을로 돌아가 개울물에 모래무지를 놓아줍니다.
“형, 모래무지한테 인사해.”
두노는 물 위에 ‘녕안’을 손가락으로 씁니다. 물속에서 모래무지가 읽기 좋게 거꾸로.
졸저인 동화집 <형, 모래무지한테 인사해>의 줄거리입니다.
이 동화를 쓴 지도 벌써 오래 됐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늘 개울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고, 다슬기를 잡고, 물속 개울돌들이 들려주는 개울물 노래를 듣고, 개울을 따라 피는 꽃 냄새를 맡으며 살던 두노와 두이에게 고향을 떠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지요.
둘은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뭔가를 가져가고 싶었지요. 그들이 선택한 것은 조약돌도, 솔방울도 아닌 하필이면 징검돌 물 아래서 노는 모래무지입니다. 어린 그들은 모래무지가 햇빛처럼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몰랐던 거지요.
그 동화집을 내고 10여 년도 더 된 어젯밤입니다.
책장 구석자리에 꽂힌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안녕, 나의 별’ 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이런 책이 여기 있었구나 할 정도로 기억에 없던 책입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모두 다 잘 아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가 자랑하는 작가지요. 그분이 그림동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쓴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런 내용입니다.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나는 빌딩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몰래 그 별을 훔쳐 주머니에 넣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밤하늘은 어두워지고, 주머니 속 별은 떨고 있었지요. 나는 별을 침대 밑에 감춥니다. 하지만 별빛은 지붕 위로 새어나가고 사람들은 나를 의심합니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별을 손수건에 감싸들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강물에 조용히 놓아주고 돌아옵니다.
제 글이 생활에 가까운 글이라면 네루다의 글은 환상성을 가진 글입니다. 두 글에 등장하는 중심 소재는 ‘모래무치’와 ‘별’입니다. 이들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지만 그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소유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가지고 싶지만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가지고 싶다고 꽃을 꺾는 순간 꽃이 생명을 잃는 것처럼 모래무지도 별도 누군가가 몰래 소유하는 순간 생명을 잃고 깜깜해집니다.
듣지 못할 뿐 모래무지와 별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수없이 애원했겠지요. 그러나 다행히 사람이란 선해서 마음의 눈이 열리면 그들을 그들이 살던 곳에 선뜻 놓아줄 줄 알지요.
서랍을 열어봅니다.
서랍 속엔 한 번도 잉크를 넣어보지 않은, 수십 년 동안 내 서랍에 붙잡혀 있는 만년필이 있고, 한 번도 켜 본 적 없는 지포 라이터가 있고, 이름도 알 수 없는 호드기를 닯은 대나무 악기가 있습니다. 내게로 왔지만 서랍 속에서 일없이 잠자고 있는 것들입니다. 셀 수 없이 이 서랍을 여닫았을 텐데 이들의 하소연을 나는 듣지 못했던 거지요. 늦었지만 이들 모두 그 쓰임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야겠네요.
올해는 내가 가질 수 없는 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겠습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깨쳐 알고, 내 삶이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소박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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