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 병서
권영상
병서를 만난 건 작은형수님댁에서였다. 마당에 날려들어온 낙엽을 비질하고 있을 때다. 담 너머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병서였다.
저녁에 놀러와!
작은형수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병서 집을 찾아갔다. 옛날 그 집이었다. 방 두 칸에 부엌이 딸린. 움펑 빠진 부엌을 메워 안방 높이만큼 들였다. 방이 뜨끈뜨끈했다.
“노총각집이 뜨끈뜨끈해야 사람이 찾아오지.”
그가 막걸리와 술잔을 들고와 앉으며 웃었다.
나무보일러라 장작을 서너 개비만 더 넣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단다. 그렇겠지! 나는 뜨거워지는 엉덩이를 들썩했다.
그는 지금도 몸이 가볍고 잽싸보인다. 겨울을 춥게 보낼 사람이 아니다. 뒷울이 솔밭이고 근방이 모두 장한 소나무숲이다. 뒤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작더미를 들어올 때 나는 봤다.
겨울을 혼자만 뜨뜻하게 보내지 말고....
내 말에 병서가 ‘여자 하나 들여놓고 살라 이거지?’ 얼른 말을 받았다.
병서는 초등학교 한 해 아래지만 나이로는 나보다 두어 살 많다. 아직 총각이다. 총각 중에서도 노총각이고, 이젠 실버총각쯤 된다.
그가 남에게 빠지는 게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학교도 다닐 만큼 다녔다. 그는 군에 입대하자, 일병을 달고 파월 함정에 올라탔다. 그 당시 그것만으로도 그는 용기있는 남자였다.
“싱거운 소리긴 한데 왜 여태 혼자 사는 거야?”
그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한잔 들이켜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특유의 웃음을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어렸을 때 말이야. 새알을 너무 뒤져 벌받는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살뜰한 남의 보금자리 망친 짓 아니야? 그러니 그 업보를 받는 거지. 생각해 보면 그것 뿐이야. 월남 가서 총은 들었지만 사람은 안 죽였다구.”
어린 시절, 보리밭에 튼 종달새 둥지의 종달새 알은 그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뒤울 소나무에 찾아와 둥지를 튼 새들도 그의 손을 비켜갈 수 없었다. 먹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화를 시켜보자고 한 것도 아니다. 순전히 깨트리는 걸로 그의 둥지 뒤지기는 끝났다.
농담삼아 병서가 그 말을 했지만 그의 내면엔 그 일에 대한 죄의식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와 굳이 그일을 들먹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와 저녁 늦도록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긴 밤을 보냈다.
뜻하지 않게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식전에 나올 때다.
나이 먹으면 마음이 자꾸 약해지나봐.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갔다 온 사람답지 않게 그가 그랬다.
사실 이제 새알을 뒤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때 그 종달새들도 날아오지 않은지 오래다. 사죄를 한 대도 할 대상이 다 사라지고 없는 막막한 인생의 오후다.
종달새 알을 뒤졌다고 노총각으로 늙어야 한다는 인과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이 순수해진다는 것이다. 내남없이 모두 정든 고향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이는 병서 뿐인 것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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