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겨울 예감

권영상 2018. 11. 8. 21:51

겨울 예감

권영상

    

 



종일토록 비 온다. 이 비를 가을비라 해야 좋을지 겨울비라 해야 좋을지. 마당을 두드리며 오는 비의 발걸음이 둔탁하다. 그리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집안에 들어앉아 고요히 빗소리를 듣는다. 싫지 않다. 싫컨 좋컨 이 비가 우리를 겨울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것은 분명하다. 모르기는 해도 이 비가 끝나면 기온이 또 한 눈금 내려가겠다.



올 봄과 여름은, 사람도 그랬지만 뜰 안의 것들도 폭염으로 힘들었다. 벌써 다 지나간 옛일같이 아득하지만 40도에 가까운 기나긴 폭염과 가뭄에 가장 심하게 시달린 건 텃밭의 감자다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감자를 키우는 내내 비 한 방울 받지 못했다. 감자는 더위에 지쳐 제대로 된 결실을 이끌어낼 엄두를 못냈다. 모두 밤톨 만했다. 그것만도 감사해 나는 몇 번이고 고맙다, 고맙다, 그 말을 해주었다.



토마토 열 포기 역시 가뭄과 폭염에 시달렸다. 수돗물을 떠다 주곤 했지만 대지가 온통 뜨거운데 그 물만으로 갈증을 견뎌내지는 못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텃밭에 나가면 목마른 어린 토마토들이 툭툭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참고 살아온 것들이 있다. 백일홍이며 봉숭아, 프렌치메리골드, 채송화와 살비아, 쑥부쟁이들이다. 이들은 그냥 꽃이라는 이유로 제대로된 물 구경 한번 하지 못했다. 햇볕 내리쬐는 한낮엔 죽은 듯이 시들어 있었고, 해 지면 그나마 살아 일어서고, 일어서고 하던 것들이다. 긴 가뭄에 벼텨낼 장사가 어디 있을까. 제일 먼저 뜰 안에서 사라진 것들이 그들이었다.



근데 그 이후로 눈에 보이지 않던 그들이 폭염이 물러가자 여기저기서 나 여기요, 여기요, 하며 일어섰다. 그들은 대개 눈길이 가지 않는 마당귀나, 풀숲 밑이나, 텃밭 모퉁이, 울타리 나무 틈새 또는 돌 틈을 헤치고 나와 꽃을 피웠다. 성글게 핀 꽃이기는 해도 꽃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그들의 눈물빛 같이 고왔다. 시간이 갈수록, 그러니까 가을의 끝자락으로 가면 갈수록 꽃의 매무새는 또렷하고, 요염하고, 향기는 그윽했다. 두어 계절의 영화를 짧은 시간에 누리고 가는 꽃들이라 그 마지막이 눈물겨웠다.

한두 차례 서리가 내렸는데도 꽃은 쉽게 시들지 않았고, 지금도 텃밭머리 나무 아래에 피는 백일홍과 프렌치메리골드는 여전히 붉고 노랗다.



그 무렵, 놓치지 않은 것이 있다. 씨앗 받는 일이다. 올해에 받는 씨앗이야말로 가장 강한 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든 세월을 겪어내면서도 꽃을 피운, 강인한 유전자가 그들 몸에 송두리째 담겨있을 것 같았다. 나는 꽃이 만들어낸 그들의 유전자를 늦가을 햇빛에 나와 소중히 한 톨 한 톨 받아냈다.

예전 같으면 그게 뭔 대수냐며 외면하였을 살비아 꽃안의 깜장씨앗도 손바닥 위에 톡톡 털어 모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토란이며 글라디올러스와 칸나는 특별히 갈무리 법을 찾아 읽고 소독하여 양파 망에 일찍 간수해 두었다. 그들 내부엔 폭염 생존법을 터득해낸 그들만의 경험과 정보가 분명히 있을 테다.



이제 남은 건 텃밭의 김장 무다. 아내가 손이 나면 가까운 어느 날 김장용 무김치를 담글 것이다. 그일이 끝나면 폭염과 실랑이하며 살았던 나의 한 해도 다 가고 만다.

한낮인데도 비 내리는 일로 날이 어둑신하다. 먼 북쪽에서 남으로 날아 내려오고 있는 철새들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밤하늘 별들도 서서히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 겨울별자리로 이동하고 있겠다. 두두두 내리는 이 비도 대지를 겨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신호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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