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올 동백꽃
권영상
동백꽃이 그립다, 그 말을 할 때였다. 마침 내 말이 받아들여졌다.
그해 2월, 며칠간의 휴가를 이용해 보길도로 떠났다. 그 무렵, 직장에 탁구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거기 들어 틈틈이 탁구를 쳤다. 탁구 모임에선 가끔 가볼만한 곳을 찾아 떠나곤 했는데 나의 한겨울 동백꽃 타령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동백꽃을 보러 보길도에 가자! 결정은 그렇게 났다. 마침 우리 중에 그쪽 지리를 잘 아는 분이 있었다. 우리는 땅끝 마을에서 윤선도 고가를 찾았고, 두륜산 대흥사에 들렀고, 고찰의 겨울 운치에 젖어 하룻밤을 산사 인근에서 자고 이튿날 여객선에 올랐다.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해무가 봄안개처럼 바다를 하얗게 뒤덮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배가 우리 배를 기습적으로 들이받는다 해도 속수무책일 만큼 바다 안개는 점점 자옥해갔다. 배가 경적을 울리며 해무 속을 파고들었다. 그 무렵, 나는 갑자기 이 바다의 수심을 생각했다. 10미터? 아니면 20미터? 20미터라면 줄잡아 내 키의 10배가 넘는 깊이다. 수영실력이랄 것도 없는 나의 능력으로 어딘지도 모를 뭍까지 헤엄쳐 갈 수 있을까,
결국 배는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바다는 깊어보였고, 조류는 빠른 속도로 굽이쳐 흘러갔다.
이번에는 배가 종을 쳤다. 금속성 종소리가 해무에 막혀 낙엽처럼 거꾸러졌다. 10여 분간 연속적으로 종소리가 날아갔다. 누군가를 찾는 비상 신호음 같았다. 이윽고 해무를 뚫고 소형 배 한 척이 시야에 나타났다. 우리는 그 배로 갈아탔다. 보길도에서 우리를 태우러 온 배였다. 보길도엔 이렇다 할 접안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실은 배가 빠른 속도로 해무 속을 뚫고 달렸다. 어느 쯤에서 꽉 막힌 안개가 열리면서 안개 사이로 금빛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이내 우리는 해무를 벗어났다.
저쪽 멀리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길도라고 했다. 꿈결처럼 나타난 섬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뱃길도 꿈결 같았다. 해무 속에서 벗어난 우리는 마치 사막 위에 추락한 것처럼 위치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랴. 이제 살았다, 그 생각뿐이었다.
우리 일행 일곱 명은 한 대밖에 없다는 이 섬 택시 안에 차곡차곡 기어들었다. 세연정을 향해 달렸다. 동백꽃은 거기 있었다. 물 위에도 동백꽃, 물 밑에도 동백꽃, 물가에도 동백꽃 지천이었다. 거기 사람들 말로는 봄이 핀다 하여 춘백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보길도는 동백섬이었다. 동백! 동백! 동백타령을 하다 보니 입에서 동백꽃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답답한 도회의 숲에서 우리가 그리워한 건 동백도, 봄도, 섬도 아니었다. 거기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은 탈출 욕망이었던 것이다.
정신이 들면서 그 섬의 짭짤한 공기를, 그 섬의 푸른 봄빛을, 해무에 막 씻겨난 햇빛을, 그 섬의 억센 사투리를 내 몸이 들어내기 시작했다. 길 위의 돌멩이를 툭툭 차며 걷다가, 바윗돌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 밑으로 올라오는 먼 봄기운을 느끼며 걸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도심을 떠나 남쪽 어느 꽃섬에 놓여있다는 걸로 지친 나를 달래고 달랬다.
활처럼 휜 예송리바닷가의 활엽목들이며,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깃대섬이며 안장섬은 잘 보면 섬이라기보다 바다를 걸어오는 공룡을 닮았다. 섬을 휘돌아 밤늦게 숙소에 돌아올 적에 그 집 담장 아래에서 툭, 동백꽃 지던 소리. 섬의 하루를 보내는 사이 나는 작은 소리에 귀를 여는 정상의 청력을 느꼈다.
꽃 지는 소리.
우리가 몰라 그렇지 꽃 필 때도 났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들 중에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는 것이란 없다. 문을 꼭 닫고 잠을 자는데도 툭, 툭, 꽃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설치던 그 때가 지금 떠오른다. 나의 한창 시절이던, 20년도 더 되는 세월 저쪽 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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