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용서를 빌어!
권영상
요 며칠 전 아침이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마루에 벗어두었던 등산화 한 짝이 없어졌다. 닳아서 등산보다는 농사일을 하는데 신어온 요긴한 신발이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다. 신발장 안에도 없다. 거기라면 왜 한 짝만 넣어두었겠는가. 순간 옆집 옆집에 사는 나비네 누렁 강아지가 떠올랐다. 물고 가다가 혹 버렸을까 싶어 집둘레를 한 바퀴 빙 돌고 왔을 때다.
“아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 짧은 사이, 등산화 한 짝이 마저 사라졌다. 강아지가 나의 동선을 엿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집을 한 바퀴 도는 사이 내 눈을 피해 신발을 물고 달아난 거다. 나는 강아지를 잡는답시고 흘끔거리며 재빨리 집을 한 바퀴 또 돌았다. 신발도 없고, 강아지 비슷한 흔적도 없다. 우리 집엔 뒷문이 없다. 울타리 삼아 배수로가 있고 목책이 둘러쳐져 있다. 나비네 강아지가 290밀리 등산화를 입에 물고 그 장애물을 건너 달아날 수 있을까.
‘세상에나!’
이 어이없는 일에 약간의 허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어쩔 텐가. 신발을 찾겠다며 마을길을 돌아다닐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비네 집을 겨냥하고 들어가는 일도 마음 내키지 않았다. 오래 신어 낡았으니까 새로 마련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는 아주 잊고 말았다.
“선생님!”
근데 점심 수저를 막 놓을 때다. 누가 나를 불렀다. 나가 보니 나비네 젊은 아빠다. 내 등산화 한 켤레를 손에 들고, 목줄을 채운 그네 집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내 짐작대로 나비네 강아지가 내 등산화를 물고간게 틀림없었다. 강아지가 나를 보자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그러더니 제 주인 뒤에 숨어 내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제가 신발을 물고 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어!”
나비 아빠가 내 신발을 마루에 놓고는 제 강아지한테 으름장을 놓았다. 어찌나 진지하게 말하는지 고개를 빼던 강아지가 내 발 앞에 걸어와 납죽 엎드렸다.
“어서! 마당에 똥도 안 누겠다고 말씀드려!”
나비 아빠가 또 한 번 다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당에 즈네 강아지가 똥을 누고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강아지는 내가 집을 좀만 비워두면 그걸 어찌 알고 우리 마당에 똥을 눈다. 여기저기 두어 무더기씩 누어 놓는다. 영역표시 치고 심한 편이다. 증거 없는 개똥을 놓고 젊은 나비 아빠와 이러니저러니 말한다는 것이 불편해 참으며 살았다. 더구나 우리 집 앞 조각밭을 나비네가 짓는 바람에 거의 매일 얼굴 보는 편이니 더욱 그렇다.
강아지가 내게 무안해하는 건 신발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나 모르게 누고 달아나던 제 똥에 대한 죄책감도 있어 보였다. 나는 이 기회다 싶었다.
“이제는 그런 나쁜 짓 하면 못 써요! 알았지? 용서해 줄 테니 돌아가거라!”
짓궂은 아이를 타이르듯 타일러 돌려보냈다.
그 탓일까. 그 사건 이후로 강아지는 날만 보면 고개를 푹 숙이고 길 한 편으로 비켜간다. 한 주일간 집을 비웠다 돌아와도 물론 마당은 깨끗하다. 강아지가 내게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무안해하던 걸 나는 그때 처음 봤다. 분명 그때 자신의 과오를 강아지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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