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문을 닫는 골목가게들

권영상 2012. 6. 22. 09:57

 

 

 

문을 닫는 골목가게들

 

                               권 영 상

 

 

 

출근길에 본 골목 굴국밥집이 수상쩍다.

음식점 안 의자들이 어쩌라고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있다. 엊저녁 퇴근할 때에 본 모습 그대로다. 퇴근이라 해 봐야 오후 6시 무렵이다. 그 무렵이면 탁자와 의자를 가지런히 놓고 손님을 받을 시간이다. 근데 어제 쌓아둔 의자가 그대로 있다. 의자의 쇠붙이들이 아침 미명에 부딪혀 이쪽을 내다본다.

 

“또 문을 닫는 모양이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 앞 골목 가게들은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빌딩이 하나 둘 서건, 가게가 하나 둘 들어서건 나는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나도 한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데 요 한 달 사이에 골목 가게들이 눈에 띄게 문을 닫는다.

드는 집은 몰라도 나는 집은 안다고 제일 먼저 문 닫은 가게는 김밥집이었다. 김밥만 파는 게 아니라 2,3천원하는 가벼운 음식들도 함께 팔았다. 밤중에 배가 출출하면 괜히 걸어나와 이것저것 먹고 돌아가던 집이다. 음식 가격이 약한 김밥집이 제일 먼저 불경기의 타격을 입었다. 그러더니 그 곁의 북카페가 문을 닫았다. 종업원 두 명과 쉰 중반의 남자 주인. 그들은 늘 팔짱을 끼고 바깥을 내다보거나 길에 세워둔 차를 닦는 게 그들 일의 전부였다.

 

“불경기가 그렇게 천천히 가게를 말려죽이는 거에요.”

그때 내가 찾아간 미용실 주인이 좀은 독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그 정도면 본전은 이미 틀렸고 빚만 느는 거죠.”

실은 그 미용실도 삐걱거리는 중이다. 조그마한 이 거리에 미용실이 네 곳이다. 가게 세를 못 내는 이유로 건물 주인한테 1차 경고를 먹었다. 계속 안 내면 더 강력한 미용실을 지금의 미용실 옆방에 낸다고 주인이 윽박지른단다.

 

김밥집 맞은 편엔 맥주집이 있다.

양주도 팔고, 소주도 파는 복합개념 술집이다. 재작년만해도 사철 구분없이 해만 지면 불야성이었다. 열 평쯤 되는 실내는 물론이고 테라스까지 술꾼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말랐다. 이런 저런 일로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안 됐어서 늘 그 안을 들여다본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상태인데도 문을 못 닫는 건 아무래도 몇 년 전의 그 영화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더니 얼마를 더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근데 오늘이다.

그 맥주집 옆 건물에 굴국밥집이 있는데 그 집 모양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 집만 문을 닫는다면 모른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마주보고 있는 네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아간다는다는 게 나를 힘 빠지게 했다. 북카페는 들러볼 계제가 안 됐지만 다른 세 가게는 가끔 찾아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집들을 한 번씩이라도 들러봐 준 게 있어서 그래도 덜 미안하다.

 

며칠 전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빚 좀 해결해 달라고 문의한 사람이 11만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 중에는 소득 100만원 이하가 53퍼센트. 경비원 아저씨들이나 손님없는 식당주인들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 일이 남의 일이긴 하지만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다. 빚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견뎌내는 그들의 삶이 내 가슴을 누른다.

 

골목 가게에 화기가 돌아야 어떻든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래야 입에서 나오는 말씨도 윤택해지고 서로 관대해진다. 돈 좀 번다고 골프채에 고급승용차를 몰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기는 해도 그러는 동네 가게 주인들이 다시 그립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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