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냄새
권영상
어미개의 본능에 대한 내용이 텔레비전에서 나왔다.
새끼를 낳은지 1주일 됐을 때다. 실험자들은 새끼 강아지와 똑 같은 크기와 빛깔의 다른 강아지를 어미 몰래 새끼들 곁에 놓아두었다. 그러자 어미개는 꼭꼭 찍듯이 그들을 골라 집 바깥으로 밀어냈다. 이번에는 크기와 빛깔이 거의 같은 20여 마리의 강아지 사이에 어미개가 낳은 네 마리 강아지를 섞어놓았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어미개는 간단히 제 새끼 네 마리를 물어왔다.
“거 참 놀랍기도 하지.”
하지만 누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담박에 타박했을 거다.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고.
“놀랍기는! 냄새 맡아보면 다 알지.”
주방 쪽에 있던 아내가 결국 내가 했을 법한 말을 했다. 동물들의 후각이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영역까지 탐지해낸다는 건 다 안다. 그래도 달리 보였다. 모정과 관련있는 실험이라 내가 더욱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갔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일 년 뒤다. 어머니 안 계시면 집에 안 가게 된다는 말이 정말 같았다. 한 해에도 몇 번씩이나, 궁금하면 내려가 하룻밤씩 자고 왔다. 술이 있다면 술 먹자는 핑계로 내려갔고, 모내기를 한다면 모밥 먹겠다는 핑계로 걸음을 했다.
근데 어머니 사후부터는 그게 잘 안 됐다. 고향 일이라는 게 꼭 어머니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안 가고 말 집안의 대소사에도 어머니가 고향에 계셔서 더 가게 됐다. 고향집에 도착하고 보니 조카 3형제 내외가 모두 모였다. 해질 무렵, 모두 거실에서 저녁상을 받고 앉았다. 이럴 때면 언제나 어머니는 길다란 교자상의 가운뎃자리에 앉아 음식을 드셨다. 그런데 오늘은 항렬 탓에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술이 몇 순배씩 돌 때였다.
나는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어머니 계시던 방이 보고 싶었다. 조용히 어머니 방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쓰시던 장롱도 그 자리에 놓여있고, 그때 그 서랍장도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 흔적을 일시에 지우기 싫다고 하던 장조카 말대로 거의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나는 어머니가 여닫으시던 옷장 문을 열어 봤다. 그 순간, 코끝이 시큰해 왔다. 퀴퀴한 듯한, 땀에 전 듯한 큼큼한 냄새가 한 순간 내 코를 자극했다. 메주가 뜰 때에 나던 그런 냄새였다. 그래, 이 냄새였다. 바로 이 냄새가 어머니 냄새였다. 오래전부터 나 모르게 내 감각기관에 배어있던 이 냄새가 지금 이 순간 불현 듯 내 기억을 일깨웠다. 여태껏 무엇하다 왜 지금 이 순간에 나는 어머니의 냄새를 여기에서 맞부닥뜨리는 것일까.
나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냄새는 아주 먼 과거의 시간대로 나를 데려갔다. 어릴 적 어머니 품에 매달려 울 때에도 어머니 품에선 이런 냄새가 났고, 고단한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나, 분가한 우리 집에 찾아오셔서 펴드린 이불에 들어가실 때에도 그 풀쩍, 하는 바람에 날려오던 냄새도 이 냄새였다. 나는 한동안 서성거리다가 어머니 방에서 나와 다시 술자리에 앉았다. 한번 맡고 보니 움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머니 냄새가 났다.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술잔을 내리는 중에도 울컥 났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부모자식을 기억하는 냄새가 따로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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