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
권영상
안도현 시인의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문학동네)가 출간되었군요. 안 시인은 이미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등의 동시집을 낸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연어>의 시인이지요. 이러저러한 가을 행사 탓에 <기러기는 반갑다>를 이제야 읽었네요.
모두 5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대체로 답답한 우리네 현실을, 2부는 시인의 상상의 따스함을, 3부는 아가의 하루하루를, 4부는 반복어를 가동하는 말 재미 시들, 마지막 5부는 동물을 중심소재로 하는 시편들입니다.
조용조용한 안도현 시인의 목소리 빛깔처럼 시들도 자분자분하네요. 맵거나 짜거나 단단하기보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한 편입니다. 두엇이 차를 마시며 둘러앉아 담화를 나누기에 좋은 편안한 느낌의 동시집입니다.
누구한테 말하려고
이슬비는 저렇게
가만가만 내릴까.
누구 귀에 대고
이슬비는 저렇게
소곤소곤 말할까?
무얼 듣고 아기는
혼자 방긋 웃을까?
-이슬비-
소곤소곤 소곤대는 이슬비 소리는 어쩌면 아기와 나누는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소통의 발견’이 이 시 속에 숨어 있네요. 그런 발견의 배경엔 우주와의 소통은 오히려 침묵에 가까울 만큼 낮은 언어로만이 가능하다고 여기는데 있겠습니다. 나직한 이슬비 소리로 풀꽃이며 나무며 아기들은 계절이 오고 가는 자연의 소식을 전해 듣는 거지요. 꼭 큰 소리로 말해야 소통되는 것이 아니지요. 목소리가 낮아 침묵에 가까울 때 나의 목소리는 너의 마음에 가 닿는 거지요.
안 시인의 ‘귀’라는 시도 낮은 목소리를 아낍니다.
혀처럼 날름거리지 않아.
입술처럼 실룩거리지도 않아.
콧구멍처럼 벌렁거리지 않고
속눈썹처럼 파르르 떨지도 않아.
나는 너를 위해
가만히 열어놓은
창문이야.
들어오렴.
다박다박 발소리만 들어도 알아
이쪽으로 다가오는
네가 누구인지 나는 알아
그래그래. 귓속말로
귓속말로 들어오면 나는 더 좋아.
위의 시와 맥이 닿아있지요? 귀는 너를 위해 열어둔 창문이라는 거지요. 주먹으로 두드려 여는 것이 아닌 이미 그때를 위해 열려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너는 큰소리치며 내게로 오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요. 다박다박 발소리만으로도 나는 지금 네가 내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안다는 겁니다. 귓속말로 나직나직 말해 줄수록 더 잘 알아듣는다는 거지요. 목소리 큰 세상에서 사느라 우리들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누군가에게는 소음입니다.
목소리가 침묵에 가깝도록 낮아지면 그 다음으로 가 닿는 곳이 있지요. 상상의 통로를 찾는 것이지요. 시인은 그 길도 혼자 가지 않지요. 꼭 둘이 만들어 가지요.
접기만 해서는
상자가 될 수 없어
접어 반듯하게 세워야지
모서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종이의 귀퉁이가 뾰족해지는 거
그게 모서리잖아
네가 뾰족해진다고
겁내지 않을 거야.
너는 바깥에서 모서리가 되렴
나는 안에서 구석이 될게.
그러면 상자가 되는 거잖아.
상자 안에 처음부터 무엇이
빼곡 들어 있었던 건 아니야
우리가 상자가 되면
맨 먼저 허공이 들어찰 거야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를 걸?
상자에 가만 귀 기울여 볼래?
병아리 소리가 새어 나올지도 몰라
상자 가득 사과를 담으면
아, 그 애의 잇몸이 보일지도 몰라.
-상자-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은 처음부터 둥근 세상이 아니었을 거네요. 처음엔 뾰족한 모서리가 있는, 상자와 같이 네모난 세상일지도 모르지요. 그 네모난 세상에서 누구는 바깥 모서리가 되고, 누구는 안쪽의 구석이 되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왔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라면 그곳이 비어 있다 해도 우리는 배부르지요. 병아리 소리가 새어나오고, 사과를 깨무는 그 애의 잇몸만 보고도 행복할 수 있지요.
다음엔 표제 시 ‘기러기는 차갑다’입니다.
기러기가 왜 차갑지? 하고
나한테 물어봐 줘
내가 말해 줄게
겨울이 왔잖아
기러기는 겨울에 날아오잖아
멀리, 멀리, 멀리
북쪽에서 날아오니까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텅, 텅, 텅
빈 공중으로 날아오느라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그러면 저 기러기
집에 데려와서 기르자
날개 밑에 손을 넣어
따스하게 만져 주자
언 강물 풀리면
물갈퀴도 빌리자
시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기러기가 차갑다는 말도 현실언어가 아닌 상상의 언어지요. 어떤 생물이든 일정 체온을 가져야 목숨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기러기가 북에서 날아왔으니 차가울 거라는 말은 관념적 상상이기도 하지요.
시인은 왜 기러기를 차가운 존재로 만든 걸까요? 그건 날개 밑에 손을 넣어 따스하게 몸을 녹여주기 위해서지요. 재미난 상상이네요. 그렇지만 그 선후의 관계는 약간 억지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억지가 눈에 거스르지 않는 것은 따스한 상상력 때문이지요. 오히려 유머스러운 효과를 보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는 이처럼 감칠맛 나는 한 구절을 중심에 놓고 구성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시에서는 ‘날개 밑에 손을 넣어/ 따스하게 만져주자’ 가 그렇고, 위의 시 ’상자‘에서는 ‘너는 바깥에서 모서리가 되렴/ 나는 안에서 구석이 될게’ 와 같은 부분들이 그렇지요.
마지막으로 말 재미 시가 인상적입니다.
망아지 좀 붙잡아 줘
고삐 풀린 망아지
망할 놈의 망아지
누가 오나 가나
망 좀 보라 했더니
저렇게 망나니처럼
우리 밭을 망치네
고삐 풀린 망아지
망할 놈의 망아지
망아지 때문에
밭농사 다 망하지.
‘망아지’라는 동시입니다.
이 시는 제 4부에 실려 있고, 제 4부의 시들은 위와 같은 말 재미를 위한 시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를 읽고 어떻게 느끼셨나요? 좀 놀랐지요? 본디 안 시인의 시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지요? 좀 과격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고요. 또 긍정적인 여느 시들과 달리 부정적이네요. 이와 같은 시들은 대개 정직한 틀에서 벗어났을 때 재미있어지고, 또 말맛도 살아납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너 때문에 밭농사 다 망쳐먹었다는 내용이네요. ‘망아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쓰지요? 망할 놈, 망나니, 망치네, 망하지 등도 ‘망아지’의 변형어로 쓰이면서 되풀이 되는 말 재미를 노리고 있군요. 우리말이 소리 말이니까 당연히 우리말이 가지는 무궁무진한 말 재미가 있지요. 동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 점을 그냥 넘겨버릴 수는 없지요.
끝으로 ‘바지랑대 끝’이라는 시를 보여드릴 게요. 이 시의 말 재미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잠자리야// 잠자리야// 여기가// 바로// 너의// 잠자리였구나
'문학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 딜런의 '불어오는 바람 속에' (0) | 2017.01.25 |
---|---|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 아름답다 (0) | 2016.12.19 |
권영상 동시집 '나만 몰랐네' 출간 (0) | 2016.10.14 |
장예모의 긴 여운 ‘5일의 마중’ (0) | 2016.08.27 |
다양한 빛깔의 향기로운 시들 (0) | 2016.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