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3

생각을 멀리 보내는 계절

생각을 멀리 보내는 계절 권영상 계절이 삼동에 와 있다. 찬바람이 온종일 거칠다. 건너편 산, 벌거벗은 나무숲이 음험한 비명을 지르듯 울부짖는다. 새파란 동천에 가득한 건 거친 바람소리뿐 처마 끝 풍경소리마저 은은한 멋을 잃었다. 뜰 마당 배롱나무 가지를 감싸준 보온 테이프가 풀려 나부낀다. 끈을 찾아들고 나가 다시 감아주고 묶는 그 짧은 사이, 냉한 바람에 온몸이 언다. 바람은 하루 종일 대지를 얼려 꾹 침묵하게 한다. 삼동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은 험하기만 하다. 여기는 구름 한 점 없는데 제주와 남쪽 도서지방, 울릉도엔 어제부터 눈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오늘 오후면 내가 머무는 이 곳에도 적지 않은 눈이 내린단다. 문단속을 한다. 커튼과 문틀에 벨크로 테이프를 붙여 바람 들어올 틈을 막고, 뽁뽁이..

목성에 강물이 흐를 때

목성에 강물이 흐를 때 권영상 아주 오래 전 목성에 강물이 흘렀을 거라는 뉴스를 들었지요. 어쩌면 그때 그 별에 살던 아이들도 여름이면 강물에 나와 떠들며 노래하며 헤엄 쳤을 테지요. 내가 만약 그 무렵 이 지구에 살았다면 산딸기 따러가는 길에 헤엄치며 떠드는 그 애들 목소리, 들으려면 듣기도 했겠지요. 우리 내일 지구별에 놀러 안 갈래?좋아, 좋아! 그런 소리, 들으려면 듣기도 했겠지요. 그러면 나는 햇빛 좋은 오후 2시에 놀러와! 그렇게 대답해주기도 했겠지요. 목성에 강물이 흐를 때 내가 만약 살았다면. 202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