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 2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 생강두둑부터 나가본다. 농사일이 힘들다 해도 생강 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힘들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지만 아직도 그들은 감감무소식이다. 강황 심은 두둑 역시 그렇다. 생강과 강황은 지난 4월 19일에 심었다. 심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들의 늦은 출현이 잔인하다. 성장하기 좋은 계절을 외면하고 두 달씩이나 컴컴한 땅속에 머물러 있다. 남쪽 아열대가 그들의 고향이라 해도 우리나라 5월과 6월 기온도 그리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그들을 기다리는데 봄을 다 바쳤다. 그때에도 새순이 나오는 데 50여일이 걸렸다. 그때는 처음이라 이들 두둑을 파헤쳐 보고 싶은 유혹을 수시로 느꼈다. 식탁에 올라오는 생강이며 강황에 이런 기다림이 숨어있음을..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권영상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차를 몰아 청계산으로 향했다. 원터골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이 정도 비라면 산을 오르기에 더운 날보다 오히려 낫다. 날 좋은 날 가뿐한 산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산도 좋지만 잔비를 맞으며 오르는 산도 좋다. 7월의 묵중한 청계산은 숨 가쁠 정도로 녹음이 우거졌다. 간밤부터 내린 비에 늙은 나무들이 더러 쓰러져 있다. 거친 세상을 살아왔으면서도 요만한 부슬비에 또 힘없이 쓰러지는 게 나무들이다. 쓰러진 나무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 나무를 비키느라 길을 돌아갈 때다. 이쪽 우묵한 골짜기 안의 떡갈나무 숲이 손짓하듯 나를 부른다. 나는 가던 길을 두고 그쪽으로 성큼 들어섰다. 쿨쿨거리던 산 물소리가 슬몃 사라지고, 우묵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