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주머니 2

사랑은 3월이 적격이다

사랑은 3월이 적격이다 권영상 2월이 갔다. 갔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지만 2월의 길은 너무 짧다. 연인이 되기 위해 만나는 길이라면 서로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사는 곳을 물을 때쯤 끝나는 길이 2월의 길이다. 좀 더 깊은 대화의 길로 들어가기엔 28일은 너무 시간이 없다.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면 2월보다는 3월이 좋다. 2월의 마음은 2월이 아니라 따스한 3월에 가 있기 때문이다. 2월 사랑은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고 헤어지면 고대 잊고 말 사랑이 2월 사랑이다. 사랑이란 서로를 물들이는 일이다. 그러나 2월 사랑은 스며들거나 깊어질 사이가 없다. 2월 사랑은 정이 없다. 헌신적이지 않다. 촉촉하지도 않고 산뜻하지도 않다. 정겹거나 물론 빛나지도 ..

박주가리의 빛나는 여행

박주가리의 빛나는 여행 권영상 바람이 분다. 처마 끝에 매달아 둔 풍경이 쟁그랑거린다. 봄바람이다. 바람은 들판의 추위가 설핏 풀리면서 시작됐다. 멀리 거제도로 여행을 간 친구는 그쪽의 봄을 찍어 보냈다. 이쪽에선 꼼짝 않는 매화꽃이 그쪽에선 한창이다. 사람은 매화꽃 사진으로 봄을 알지만 대지는 이미 봄을 느끼고 있다. 생명 활동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던 일을 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바람이 여기저기로 몰려다닌다. 그 바람 속에 반짝이며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보인다. 은실 깃털들이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집 남쪽 모퉁이에서 바람을 타고 몰려나온다. 점심 끝에 무 한 덩이를 꺼내려고 텃밭 무 구덩이에 나가며 보니 마루 틈 사이에, 으아리 마른 덩굴에 그 반짝이던 은빛 깃털들이 걸려있다. 놀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