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들 수박들 권영상 수박밭에 국방색 얼룩무늬 점퍼를 입은 수박들이 모여들었다. 전쟁터로 달려나갈 모양이다. 여름이 이 땅을 덮치면서부터 수박들의 반격이 더욱 빨라졌다. 마을 과일가게들을 속속 점령 중에 있다. 오늘 새벽엔 수박들이 이웃 도시를 지키러 가기 위해 엇 둘! 엇 둘! 트럭에 올라타는 걸 보았다. 2023년 여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3.04.09
유모차 유모차 권영상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온다. 거기 수박 하나 덩그러니 앉아 있다. 아기들은 이제 우리나라로 오지 않는다. 42호 2022년 여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6.25
비틀, 한다 비틀, 한다 권영상 수박 한 통 안아들고 내가 비틀, 한다. 그때 하늘도 비틀, 했고 가게 앞 마당도 비틀, 비틀거렸다. 세상이 비틀, 하는 그 사이 내 안에서 누가 재빨리 중심을 잡는다. 비틀, 하던 하늘이 땅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2021년 가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1.06.20
수박 한 덩이 수박 한 덩이 권영상 요즘은 그렇다. 수박 한 덩이, 이웃을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끼리 또 한 번 흠뻑 만나기 위해 남으면 냉장고로 쏙 들어간다. 얼른 문 닫어! 눈에 띌까봐 수박이 소리친다. 쿵, 내 마음이 닫힌다. <한국문학신문> 2019년 6월 5일자 내동시 참깨동시 2019.05.29
제비가 돌아왔다 제비가 돌아왔다 권영상 볕이 따갑다. 하던 일을 놓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접어 들고 나왔다. 데크에 세워둔 빨래 건조대에 간밤에 덮고 잔 이불을 널었다. 한 사나흘 서울에 가 있다가 안성에 내려올 때면 으레 이부자리부터 내다 말린다. 근데 오늘은 아니다. 유난히 볕이 깨끗하고 아까..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