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2

봄비와 살구나무

봄비와 살구나무 권영상 간밤에 봄비가 왔다. 봄비치고 풍족하게 왔다. 여름비도 좋고, 가을비도 좋지만 비 중에 봄비만큼 좋은 비가 있을까. 봄비는 잠든 풀씨를 깨운다. 그리고 그들을 환한 햇빛 세상으로 이끌어 들인다. 무엇보다 봄비가 하는 가장 놀라운 일은 대지를 푸른빛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아이들 말로 하자면 요술비가 봄비다. 봄비 그친 뜰에 나선다. 매화도 피고 산수유도 피었다. 건너편 산자락에 드문드문 선 생강나무도 오래 전부터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은 봄비가 오기 전부터 이미 와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봄을 느끼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매화나 산수유 꽃만으로 선뜻 봄이 왔구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봄이 봄이 되려면 적어도 마을에 살구꽃이 피어야 봄이다. 살구꽃이 피어야 고즈넉하던..

4월이 오면

4월이 오면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 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09년